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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Jan 06. 2022

말그대로 불꽃튀는 네덜란드의 새해맞이

이사람들, 불꽃, 아니 폭죽에 진심이다.

2022년 새해가 밝았다.

벌써 4번째 맞이하는 이곳에서의 새해는 몇번을 겪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던 그 날을 절대 잊지 못할거다.


갓 네덜란드에 도착해 어차피 할일도 딱히 없었던 나는 당시 일하던 클럽에서 새해전야에 일을 하면 200%의 급여를 준다는 말에 혹해서 겁도 없이 덜컥 쉬프트를 받았었다.지금 생각해보면 200%의 급여가 제공될 때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말이다.


한국에서의 새해라고 하면 평화로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가족들과 시상식들을 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갓 20살이 된 고등학교 졸업반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그들의 패기도 추위에 맞물려 사그라든다.

나는 한국에서 이곳과 버금가는 광란의(?) 새해 전날밤을 지낸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정말 쥐어짜낸 기억속에서도 그냥 친구들과 둘러앉아 치맥을 먹으며 맥주 짠- 하고 새벽 한시 전에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래서 네덜란드도 비슷하겠거니,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당시 밤 10시 출근길 자전거를 타고 도시의 공원을 가로질러가는데 '펑!' 하는 폭음이 이어폰을 뚫고 들어온다.너무 놀라 멈춰 두리번거리는데 여러 무리의 청소년, 특히 남자청소년들이 후드를 뒤집어쓴 채 도보며 자전거도로며 모든곳에 조잡한 수준의 폭죽을 던져대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고,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않고 사람들을 향해서도(!!!) 폭죽을 던졌다. 이어서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내가 있던 자전거도로 위에도 여러번의 폭죽이 던져졌다. 가만히 있다가는 위험해지겠다 싶어 얼른 페달을 밟아 공원을 벗어났다.


클럽에 도착해서 이 황당무계한 일을 털어놓는데 그런 나를 더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여기서는 원래 그래. 이게 전통이야."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던 이 새해전야는 내 알바 인생 중 가장 힘든 날들 중 하나로 기억된다.(그 다음 힘들었던 날은 네덜란드의 공식 축제일인 King's Day..이는 나중에 써보도록 하겠다.) 밀려들어오는 손님들에 미친듯이 수백개의 칵테일과 샷들을 만들어냈고 영하의 기온에도 클럽안은 후덥지근했었다.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후 엄청난 불꽃놀이 쇼가 펼쳐진다.

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병적으로 좋아하고, 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꽃쇼와는 다르다.


사진 출처: NOS | 놀랍게도 이게 정말 흔한 광경이다. 뿌연 연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도 힘들다. 사람들이 차 밑으로 폭죽을 던지기도 한다. 왜? 재밌으니까!

어떻게 다른가 하면, 우선 이 '멋있고 예뻐야할' 불꽃놀이가 대부분 그냥 폭죽놀이로 그쳐지며, 전문가들에 의해서 디자인되고 진행되는 '쇼'가 아니라 정말 길거리에서, 짚 앞에서, 뒷마당에서, 공원에서 사제로 만들어낸 made in china의 안전성에 의문이 드는 말그대로의 미니폭탄들에 불을 붙인다는거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매년마다 사상자나 혹은 사망자까지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전통'이라며 본인들은 이를 보고 자랐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게 그들의 입장.





사진 출처: Nu.nl - Carbidschieten. 네덜란드인들이 폭죽을 얼마나 가깝게 하고 자라는지 잘 나타내주는 사진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Carbidschieten 이라는것도 있다.직역하면 milk can shooting (우유 캔 슈팅)이라는 뜻인데, 말그대로 우유를 담는 드럼통 사이즈의 큰 캔에(윗 사진에 나오는 모습) 탄화칼슘을 넣고 물 등으로 조금 적신 뒤 한 쪽을 뚜껑이나 플라스틱 공으로 막는다.그런 다음 다른 한쪽에 불을 붙여서 최대 10미터의 거리로 뚜껑이나 플라스틱 공을 발사하는 아주 간단한 형태의 말그대로 캐논볼이 연상되는 폭탄이다.


폭탄이니만큼 엄청난 굉음이 발생되는게 특징이다.


사진 출처: NOS


이 굉음을 극대화 하기 위해 여러개의 우유 캔들을 한꺼번에 발사시키기도 한다. 옆에 서있다고 생각만해도... 귀가 아프다. 이 굉음은 몇 킬로미터 거리에서도 생생히 들릴 정도여서 한번은 전쟁이라도 난줄 알았다.



불꽃놀이로 인한 문제들을 네덜란드 정부가 그저 손놓고 방관만 하는것은 아니다.


안그래도 코로나로 인해 과부하 상태인 응급실을 어리석은 불꽃놀이로 인한 사상자들로 인해 더 넘쳐나게 할순 없었다 싶었는지 작년 (2019년 12월 31일)부터는 한창 통금시간까지 있던 하드락다운에 덧붙여져 불꽃놀이가 당연히 금지되었고 올해 (2020년 12월 31일)에도 여전히 락다운인것에 더해져 다시 한번 금지령을 발표했다. 작년 네덜란드에서는 전국적으로 불꽃놀이를 파는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는다.옆나라 벨기에까지가서 수백만원어치의 폭죽을 사다 나르고 길거리 곳곳에는 대형의 캠프파이어(?)가 생겼다.말이 캠프파이어지 그냥 가구며 상자며 하는 대형폐기물들을 모아 불을 붙인 아주 요상한 광경이었다. 시커먼 연기가 도시 곳곳에서 피어오른다. 이 나라, 환경친화적인 정책을 벌이는 곳 아니었나? 경찰차들이 지나가며 차 안의 경찰관들도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뭐야, 이렇게 길거리에 불을 싸지르는데 불법이 아니라고? 


결과적으로 올해에도 어김없이 한명의 12살짜리 남자아이가 사망했으며 이외에도 한명의 소년이 손 하나를 잃기도 했다. 공식적으로만 병원에 이송된 어린 아이들이 5명이다. 기사에 실리진 않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 경미한 부상을 입는 경우가 400건이나 된다고 한다. 그래도 전년도는 1,300건이었는데, 많이 줄은거라며 네덜란드 정부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제 정부는 이 '일시적'이었던 불꽃놀이 규제를 완전히 정착시킬지를 논의중이라고 한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섣불리 판단할순 없지만, 아무리 전통이래도 사람들, 특히나 안정성의 심각성이나 위중함을 모르는 어린이들이 죽어나가는 이 악습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잘 이해가 가진 않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폭죽소리에 겁을 먹고 침대 밑에 숨어들어간 우리 고양이나, 두려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던 공원이 오리들과 백조들, 산책을 하다가도 폭죽이 튀어오르면 놀란 마음에 짖어대는 강아지들을 보면 미안하기가 그지 없다. 1~2분에 한번씩 펑펑 터지는 폭죽소리에 사람도 깜짝깜짝 놀라는데, 동물들은 무슨 죄일까.


집앞에 주차해뒀을 뿐인데 운이 안좋아 폭죽에 불이 붙은 차주들은 무슨 죄일까. 본인들의 차에 불이 붙어도 그냥 '전통'이니까 넘어갈수 있을지, 궁금하다.



불꽃놀이 그 자체를 반대하는건 아니다. 나 역시도 아름다운 불꽃놀이로 유명한 시드니의 달링하버에서 그 화려한 쇼를 바라보며 새해도 펑펑 터지는 불꽃처럼 대운도 펑펑 터지길 기원한 적이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나 전문성과 이 불꽃놀이가 길어봐야 30분남짓이었다는거다. 네덜란드에서는 밤 새도록 펑, 펑 소리가 사방에서 끊이질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의 개개인의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폭죽의 남용, 특히 미성년자들의 경우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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