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려야 뗄 수 없는 천적을 아군으로 만드는 여정
월경(月經, mestruation). 의학적으로는 수정란의 착상을 준비하기 위해 두꺼워졌던 자궁의 내막이 수정란이 착상이 되지 않을 시 탈락되어 몸 밖으로 출혈로 배출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청소년기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이 현상을 부끄럽게 여기며 마법이니 생리니 하는 이름을 붙여가며 숨기기 급급하다. 월경 대신 '그날'이라고 불려지며 사회 속에서는 알게 모르게 쉬쉬하는 분위기이다. 여성용품도 '생리대'라고 불린다. '생리'는 사실 월경을 가르키는 말이 아닌데도 말이다. 여성용품을 빌리려고 해도 누가 볼까 후다닥 옷소매, 뒷주머니 등에 숨겨 얼른 화장실로 도망간다.
게다가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하며 우리는 월경이 여간 귀찮게 느껴지는 게 아니란 걸 점점 더 배우게 된다. 시간이 점점 지나며 여자로 태어났다면 이 월경을 내게서 떼려야 뗄 수가 없고 생물학적 현상 그 이상의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기를 낳을 준비를 한다는 것이라는 둥 진정한 여자가 된 것이라는 둥 분명 아름다워야 할 현상인 것 같은데, 직접 겪는 사람으로서는 아름답기는커녕 내가 뭐만 하려면 방해하는 천덕꾸러기처럼 느껴진다.
나부터도 지난 십여 년만 해도 월경전 증후군 (Premenstrual Syndrom, PMS)에 시달리며 월경이 다가오면 짜증이 치솟고, 기분이 오락가락하며 폭발적인 식욕과 피부 트러블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조사에 따르면 90% 이상의 여성들이 이 PMS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린 보통 월경이 다가오기도 전부터 이미 짜증이 나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가 월경이 시작되면 패드니 탐폰이니 컵이니 다양한 제품을 써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냄새라도 날까 봐 신경을 쓰고, 월경혈이 샐까 봐 여러 겹의 수건을 깔고 잔다거나, 더부룩해지는 소화능력과 부어오른 아랫배, 가끔은 요통 혹은 두통까지도 경험한다. 영 커디션이 좋지 않은 채로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을 보낸다. 정말 성가시기가 그지없다. 그뿐만 아니라 여행을 간다던가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해도 이 월경 주기를 체크해야 하고, 월경 주기에 맞물린다면 경구 피임약 같은 호르몬제까지 복용해가며 어떻게든 이 불가항력의 생물학적 현상을 제어해보려고 한다. 당연하게도 슬프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들 (우울감, 피부 트러블, 체중 급증) 또한 우리의 몫이다. 출혈이 멈추면 아, 해방이다. 싶은데 또 곧장 PMS의 시기가 다가온다.
더 개탄스러운 점은 우리가 사실상 평생의 절반 이상을 이렇게 보내버린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한 달 중 일주일 동안은 월경전 증후군에 시달리고, 그다음 주 동안은 위의 증상들을 경험한다는 거다. 결국엔 한 달의 네 개의 주들 중 2주는 보통 우리가 타고난 생물학적 현상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리게 된다.
최근 읽게 된 Maisie Hill의 Period Power - harness your hormones and get your cycle working for you (월경의 힘 - 당신의 호르몬을 활용하여 당신의 주기가 당신을 위해 작용하도록 해라)라는 책에서는 이 점을 강조하며 왜 우리 여성들이 월경을 우리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예측할 수 있듯이, 저자는 우리가 피할 수 없이 경험하고 있는 월경의 현상이 어느 순간 피해야 하고 꺼려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해 지적하며 오히려 우리는 이를 우리의 최대 장점 (advantage)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처음 책을 읽을 때 이게 무슨 말이람, 월경통과 월경전 증후군 탓에 장기적으로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는 나로서는 엉뚱한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그런데 저자의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듣자 하니 마치 내 인생에서 건드려지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이 발견된 기분이었다. 엄청난 충격과, 배신감과, 안타까움과, 놀라움 등등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호르몬과 월경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Maisie Hill 책 참고)
아주 간단하다.
1. 월경 주기 기록하기
우선, 본인의 월경 주기를 기록하고 트랙 해야 한다.
출혈이 시작되는 날부터 1일로 기록한다. 그다음 날부터 2일, 3일, 4일.. 쭉쭉 기록한다.
출혈이 멎은 후에도 계속 계속 날짜를 센다. 그렇게 세다 보면 다시 출혈이 시작되는 날이 온다.
그게 지난 출혈이 시작된 날로부터 28일일 경우도 있고, 25일인 경우도 있으며 30일인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므로 본인이 기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주기가 정확하지 않대도 상관없다.
이 기록을 돕기 위해 다양한 어플들도 존재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Clue라는 어플을 추천한다.
다른 어플들이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스캔들에 휘말린 적도 있고, 국산 어플도 많이 써봤는데 늘 2% 부족한 느낌이었다면 Clue나 Flo가 가장 주기 예측이 정확하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간편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의 다이어리에 지면으로 기록하는 방법도 있다.
2. 컨디션 기록하기
주기를 기록하면서 그냥 날짜만 세도 우선 반은 시작하는 것이긴 하지만, 본인의 컨디션을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컨디션 기록이라 함은 거창한 일기 같은 게 아니더라도 말 그대로 '기분'을 기록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날씨처럼 해님, 구름, 비, 번개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었고 그냥 '짜증남', '피곤', '활기' 같이 간단한 단어들을 사용해서 기록하기도 했다.
신체적인 증상들도 기록하는 게 좋다 '더부룩', '허리아픔', '뾰루지' 등등 쓰면 된다.
누구 보여줄 것도 아니니까 자유롭고 솔직하게 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꾸준히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매일 자기 전에 양치하면서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두고 단어를 한개라도 쓰는 데에 의의를 두고 기록했다.
3. 최소 3개월 동안 이 과정을 지속하기
나도 안다. 이게 얼마나 번거롭게 느껴지는지. 한 달도 아니고 3개월이라니.
하지만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이 월경을 3개월만 투자해서 나의 편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그냥 여전히 날 휘두르도록 내버려 둬서 이리저리 끌려다닐 것인지는 내게 달려있다.
3개월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그다지 길지도 않다. 일요일 12번이다. 우리 모두 주말이 얼마나 짧게 느껴지는지를 안다면 대충 감이 오리라 믿는다.
4. 기록에 따라 나의 다음 한 달을 계획하기
중요한 것은 이 한 달 계획이 달력의 1일부터의 한 달이 아닌 나의 주기 1일부터의 한 달이어야 한다는 거다.
이쯤 되면 여성이 신체가 엄청나게 신기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기록을 살펴보면 알게 모르게 패턴이 지속된다. 그리고 이 기록이 장기화되면 그 패턴을 예측하게 되고 이에 따라 전략을 짤 수 있어며, 더 중요한 것은, 패턴을 이해함으로써 그 패턴들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 (power)을 얻게 된다.
더 이상 내 호르몬과 생물학적 현상이 내 일상을 휘두를 수 없게 된 것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한 주기를 이렇게 반으로 크게 나눈다면 월경 전까지는 황체기, 월경 시작 첫째 날부터는 난포기로 나뉜다.
난포 기는 월경 첫째 날부터 배란일까지인데,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높아진다. 배란일이 점점 가까워지며 더 높아지는 에스트로겐의 분비량으로 인해 우리는 보통 활발하고 상승된 에너지, 자신감, 활동적이고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기분도 든다. 즉, 이 시기에는 바깥쪽을 향하는 에너지를 요구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면 더 효과적이다. 중요한 프로젝트의 발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반면에 배란일부터 월경 첫째 날까지인 나머지 반, 황체기에는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월경일에 점점 가까워지며 우리는 점점 더 쳐지고 우울하며 무력감, 무기력함, 따분함을 느끼게 된다. 이 호르몬의 영향을 더 받는 사람들은 나처럼 PMS에 시달린다. 평균적으로 이 황체 기는 14일 정도 지속된다. 그러니 반대로 이 시기에는 사람들을 만나며 외향적인 데에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다. 조용히 앉아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거나, 나의 창의성을 요구하는 활동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제 우리는 드디어 우리의 인생 절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하리만치 간단한데 이상하리만치 우리는 이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살아왔다.
또, 잊고 넘어가면 절대 안 되는 점들이 몇 가지 있다.
1. 우선, 나도 내가 의사가 아닌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몸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니 나의 포스팅에 전적에 의지하거나 책이나 검색에 의지해서도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의 기분, 컨디션, 감정 기록이 중요한 것이다.
2. 이 방법은 정말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지속하게 된다면 습관이 되기 때문에 더 쉬워진다.
3. 물론 우리가 황체기에 있다고 해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거나 프로젝트에 빠진다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악용되어서도 안된다. 이 방법은 목표는 내 몸과 호르몬 분비에 따른 내 몸의 '의학적'인 변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중심이다.
4. 궁극적으로는 이 이해도를 바탕으로 나 자신이 '히스테릭'하거나 '변덕스럽게'느껴지거나 하는, 자멸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호르몬의 영향임이 증명되었다. 우리가 미친게 아니다.
이 방법을 사용한 지 약 3개월이 경과했다.
물론 3개월 내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기록해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밀렸더라도 그날에 내가 뭐했었지, 마치 밀린 그림일기를 쓰던 초등학생 시절처럼 한 단어라도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그냥 내가 월경전 증후군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느꼈던 부분들도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상 따지고 보니 월경전 증후군도 약 하루만 나타났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난 아마 월경전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호르몬의 흐름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다가오는 월경주기가 두렵지 않고,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월경주기가 다가오는 지금 넘쳐나는 활기와 에너지를 더 최대치로 활용하려고 느끼고, 친구들을 만나려고 약속을 잡았다. 대신에 월경이 시작된 다음의 예정들은 더 고요하고 정적인 것들로 이뤄뒀다.
같은 맥락으로 회사의 장기 프로젝트 계획도 난포기에 더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은 걸 알기에 그 계획과 전략의 방법이 달라졌다. 난포기의 나 덕분에 황체기의 나는 좀 더 여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파트너 또한 이제는 나의 오락가락한 기분에 당황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현상임을 이해하고, 나를 미친 여자처럼 취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난포기의 나와 함께할 데이트와 황체기의 나와 함께 할만한 데이트를 잘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남성들의 입장에선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로 우리 여자들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삶을 거의 평생 산다.
내가 그랬듯이 더럽고 찝찝하고 부끄럽게 여겨져야 한다는 사회의 시선 속, 혹은 산부인과에 가기엔 신경 쓰이는 남의 시선들에 답답함을 느끼고 동성 친구들과 얘기해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이해가 힘든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여성들이 한 번쯤은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라고 느껴진다. 이제 나는 월경이 오히려 아름답고 엄청나게 흥미로운 현상이라고도 느껴진다. 여성의 몸은 말 그대로 달(moon, 月)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