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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Jan 25. 2022

네덜란드 주택가 길거리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아니, 있긴 있다. 땅속에.

전형적인 쓰레기통. 나도 이런 걸 썼었다.

네덜란드에 도착해서 가장 처음 살게 되었던 가정집 형식의 집에서는 호주나 이탈리아에 살 때처럼 쓰레기통이 하나씩 주어진 형식이었다. 쓰레기통에 온갖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모았다가 내놓으면 일주일에 한 번도 아니고 무려 2주일에 한번! 거대한 트럭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그 안의 쓰레기는 수거한 채 빈 통은 거리에 다시 두고 가는 형식이었다. 


이 방식이 여간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우선은 나와 다른 3명의 하우스메이트들, 즉 총 4명의 성인이 사는 곳에서 발생되는 어마어마한 쓰레기 양에 비해 수거하는 빈도수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한 집마다 주어지는 일반 크기의 쓰레기통에 성인 4명이 만들어낸 2주 분량의 쓰레기가 꽉꽉 차서 늘 발로 밟고, 넘치고 하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거주자들 모두가 유학생 신분으로 공부하랴 아르바이트하랴 바쁜 와중에 시험기간 등등이 겹쳐 어쩌다가 그 쓰레기 수거일마저 놓쳐버리면 우리는 거의 한 달 내내 넘쳐버려 닫히지도 않는 쓰레기통과 그 옆에 어쩔 수 없이 검은 봉지들이 쌓여가는 뒷마당을 바라보며 다음 수거일엔 반드시 내놓으리라, 당번까지 정해가며 잊지 않으려 했다.


수거하는 방식. 북미에서 찍힌 사진 같은데 비슷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쓰레기 수거일에도 불편함은 계속된다. 예를 들어 한 길 (street)에 10가구가 산다고 치면, 10개의 쓰레기통이 2주일에 한번 모두 옹기종기 모여 길가에 늘어서게 된다. 내가 살던 곳은 이상하게도 우리 집 앞에 내놓으면 수거를 하지 않는 일이 있어서 다른 집들이 모아둔 쓰레기통 옆에 끌고 가서 세워뒀어야만 했다. 아무리 뒤쪽에 바퀴가 두 개 달려있다고 해도 묵직하고 불결한 쓰레기통을 끌고 가는 게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비바람이라도 거세게 부는 날이면 (참고로 네덜란드는 체감상 1년에 200일은 비바람이 휘몰아친다) 수거한 뒤 비어있던 쓰레기통이 쓰러지고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기도 해서 찾으러 돌아다녀야 하고, 한 번은 누군가가 우리 집 쓰레기통을 본인 집의 부서진 쓰레기통과 바꿔 쳐 가져가 버려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기다렸다가 2주 뒤 재빨리 탄환 해야 했던.. 전략까지 필요했던 경우가 있었다.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아파트의 거대한 공용 쓰레기통에 넣기만 하면 됐던 한국이 약간 그리워졌었다. 




좌: 전에 살던 집의 스타일 / 우: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스타일

그러다가 1년 차가 조금 안 되었을 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 살던 집은 도시에서 좀 외곽인 주택가였다면 이번에 살게 된 집은 도시에서 엄청 가깝진 않지만 주택가보다는 우리나라로 치면 빌라촌 정도 되는 곳이었다. 층층마다 한 집씩 있는 게 흔한 구조인데, 이곳에선 한 거리에 적어도 50가구는 넘게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좌: 내가 사는 도시 (Groningen)의 쓰레기카드 (Huisvuilpas) / 우: 흔히 보이는 쓰레기통. 왼쪽의 작은 네모에 카드를 대면 뚜껑을 열수 있다.

살다 보니 당연히 쓰레기 버릴 일도 생겼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생각해보니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동거인에게 우리 쓰레기통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내게 카드 하나를 건넨다. 이게 뭐야? 하고 물어보니 따라오란다.

따라가 보니 우체통만 한 크기의 쓰레기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땐 정말로 아, 우리같이 야외 공간이 없어 쓰레기통 보관이 어려운 집들에겐 우체통만 한 크기의 쓰레기통이 집집마다 하나씩 주어지는 거구나. 싶었다. 


카드 리더기에 카드를 대니 '탕-'소리가 나고 손잡이를 밀어 올리니 뻥 뚫려있을 거란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는 작은 공간이 드러난다. 아마도 꽉 찬 쓰레기봉투 하나가 딱 들어맞을만한 공간에 쓰레기봉투를 넣고 손잡이를 다시 끌어당겨 닫으니 쓰레기봉투가 어딘가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이거.. 재밌잖아?!


설명을 들어보니 사실 이 쓰레기통 지하!! 에는 그 구역의 모든 다층 가정들이 일주일 넘게 쓰레기를 버려도 넘치지 않을 크기의 커다란 컨테이너가 묻혀있다고 한다. 같은 구역이어도 만약 본인의 집이 독립 주택 형식이라면 똑같이 쓰레기통이 주어지긴 한다. 

주기적으로 시청에서 거대한 트럭이 와서 수거해가는 모습은 나름대로 장관이고 너무 신기해서 아직도 볼 때마다 새롭고 혁명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게 모여진 쓰레기가 수거되는 모습

사진에서 볼 수 있다시피, 트럭에서 인형 뽑기 같은 집게가 쑥 나와서 위쪽의 우체통 크기 만한 쓰레기통을 끌어올리면 지하에 있는 컨테이너가 딸려 올라오고, 트럭에 그 내용물을 쏟아서 비워내는 형식이다. 링크에 접속해보면 그 광경을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단순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방식이 왜 혁명적이냐 하면,

1. 거리 미관에 상당히 좋다. 내가 사는 길거리에 알록달록한 색상의 냄새나고 오염된 쓰레기통이 없다는 건 엄청난 큰 차이점을 느끼게 해 준다.

2. 쓰레기 무단 투기를 줄인다. 가구마다 하나씩 주어지는 이 카드 (pass)는 종종 쓰레기가 잘 투기되었는지 조사할 때 쓰이기도 한다. 대략 10~15가구당 하나의 지하 컨테이너 쓰레기통이 할당된다. 내게 할당된 곳이 아니면 카드 리더기에서 읽히지 않아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3. 시청에서의 관리가 용이하다. 만약에 쓰레기통이 꽉 차서 내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된다면 곧장 시청에 보고를 하면 보통 24시간 이내에 트럭이 와서 쓰레기통을 수거해간다. 작동하지 않거나 오염이 되어있는 것도 시청에 보고를 하면 청소를 해준다!

4. 집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는다. 그때그때 발생하는 쓰레기를 곧장 지하의 컨테이너에 버릴 수 있다는 것, 쓰레기 수거일을 놓쳐서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내 삶의 질을 예상치 못하게 상승시켰다.


언젠가 인스타그램 혹은 트위터에서 네덜란드의 혁명적인 쓰레기 수거 법에 대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도 처음엔 엄청 신기했는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도 어제 운동 갔다가 오는 길에 마치 인형 뽑기 하듯 뽑혀서 비워지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컨테이너와 그 옆에 로봇을 조종하듯 컨트롤러로 그 집게 팔을 조종하던 분을 보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 아닌 감상을 하게 되었다.


특히나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우선은 쓰레기를 버릴만한 공공 쓰레기통이 없는 것을 둘째치고 빌라촌에 구석구석에 쌓여있던 종량제 봉투나 음식물 쓰레기통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이 시스템을 도입하자기엔.. 솔직히 한국인들은 지하에 뭔가를 만들 거면 차라리 지하주차장을 만드는 것을 더 환영할 것 같기도 한 게 내 개인적인 인상이다. 


제아무리 혁명적이고 신기한 네덜란드의 '수거'시스템에 불구하고 '처리'과정에는 나도 의문을 가진 적이 종종 있었다. 플라스틱, 종이, 캔류, 비닐류, 음식물쓰레기 등등 모든 분리수거란 분리수거를 하는 한국과는 달리 나는 이곳에 도착해서 분리수거 없이 모두 한 곳에 때려(?) 넣은 뒤 버리는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말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이던, 플라스틱이던, 캔이던 모두 넣는다. 종이와 유리만 제외하고. 분명히 나름 '친환경적'인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사는 도시인 Groningen은 특히나 이 분리 시스템 (post-seperation)이 잘 갖춰진 공장이 따로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종이와 유리는 이 과정에서 분류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따로 분리수거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는, 시청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종이와 유리류라도 분류하려고 한다.




'지속 가능한 삶'과 '지속가능성' 즉, sustainability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 가능성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 불결하게 여겨지지만 우리 삶에 필수불가결인 부분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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