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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Mar 07. 2022

네덜란드에서 코로나 걸린 후기

나는 안 걸릴 줄 알았지..

벌써 이 코로나라는 지긋지긋한 역병 아닌 역병이 창궐한지도 3년 차이다. 내 기억으론 2020년 초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그 심각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그 해 여름이 되어서야 여러 가지 행사들이나 비행들이 줄줄이 취소가 되며 유럽 내에서도 유행이 퍼지게 되었다. 이제 벌써 2022년 3월, 거진 2년 가까이 동안 나는 정말 별의별 일을 다했다. 규제가 조금만 완화되면 그 틈을 타서 해외여행 (그래 봤자 같은 유럽 내)도 가고, 계속해서 파트타임으로 바텐딩이나 웨이트리 싱도 하고, 심지어는 한국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이렇게 오만 곳을 쏘다니면서도 나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차서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고 묻는다면 마스크 안 쓰기로 유명한 유럽에 살면서도 나름대로 마스크도 열심히 쓰고 다녔으며 손소독제로 모든 것을 닦고 아무튼 난리 부르스라고 여겨질 만큼 개인 방역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다,라고 답할 수도 있겠다. 그 결과로 정말 2년 동안은 주변 사람들이 델타니 뭐니 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도 나는 멀쩡했다. 아니, 했었다. 게다가 백신도 세번이나 접종했으니, 아주 자신만만했다.


내 파트너는 웬만해선 잘 아프지 않다. 유행 감기에도 꿈쩍 않고 소화불량이나 두통 같은 스트레스성 증상을 겪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프더라도 별로 티도 안 내고 약도 안 먹고 버텨내는 어찌 보면 약간 우둔한 스타일이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아침 본인이 아무래도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이게 목요일 아침이었고, 우리는 그 주 주말에 영국으로 주말여행을 계획하여 비행기 티켓이니 호텔이니 모두 예약을 끝낸 상황이었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에도 평생 한 번도 아프단 소리 않는 사람이 아프다고 하니 이건 코로나가 분명하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셀프 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선명한 두줄의 양성. 그 길로 네덜란드의 보건당국에 해당하는 GGD에서 제공하는 PCR 검사를 예약했다. PCR 검사 결과 파트너는 양성, 나는 음성.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잠시 내가 코로나에 걸리는 건 시간문제이겠구나 싶었다. 단 둘이 같이 사는 플랫에 파트너만 격리시킬 수 없어 결국엔 반포기 상태로 온라인으로 이것저것 식료품 포함 장을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어쩔 수 없이 런던행 비행기표를 미루고 호텔 예약을 취소한 채 실망감과 알 수 없는 짜증을 느낄 새도 없이 파트너는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이 시점 바로 그 전주에 네덜란드 정부에서 코로나 관련 모든 규제 (백신 패스, 음성 검사지, 최대 인원, 영업시간 제한 등등)를 철수한 시기였기 때문에 예상을 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아닐 줄 알았는데, 라는 마음에 충격 아닌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네덜란드 정부에서 코로나 관련 규제 을 모두 폐지했을 때 코로나 확진자도 5일만 격리를 하면 된다고 규칙을 바꿨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파트너는 이틀을 끙끙 앓았고 나는 3일 차까지도 아주 멀쩡했다. 내 몸의 건강함과 면역력에 감탄하며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이틀만 더 버티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3일 차 저녁, 목에서 칼칼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길로 코로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참 신기하게도 그다음 날 아침 곧장 셀프 키트로 검사를 했을 때에는 아직도 음성이었다. 건조한 공기 때문인가, 아니면 플라세보처럼 기분 탓인가, 싶다가도 혹시나 모르니까 다시 한번 PCR 검사를 예약했다. 결과는 양성. 다행히도 큰 증상 없이 파트너의 경우와 비슷하게 독감같이 지나갔다. 파라세타몰과 이부프로펜 비타민을 줄줄이 입에 털어 넣으며 하루하루를 그냥 버텨냈던 것 같다.


내가 뒤늦게 확진이 되는 바람에 우리의 자가격리는 총 9일로 늘어났지만 그 전의 14일에 비하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 9일 동안 우린 밀린 넷플릭스를 정주행 하고, 보드게임으로 경쟁구도, 그리고 비디오 게임을 하며 전우애를 다지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여 요리를 하거나 베이킹을 했다. 시간 없다는 핑계로 쌓아두기만 했던 코바늘 재료를 다시 찾아서 고양이 모자와 케이프도 떠주고, 그냥 누워서 하루 종일 웹툰을 정주행한 날도 있다. 지금 써놓고 보니 아주 바람직한 한량의 삶을 산 것 같다. 아주 멀쩡 한 건 아니었지만 아주 아픈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버틸만했던 것 같다. 그렇게 10일 차 아침, 둘 다 셀프 키트 음성이 나오고서야 우리는 맘 편히 슈퍼마켓에 새로 장을 보러 갔다. 오늘 아침엔 출근까지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아직까지도 내가 코로나에 걸렸었다고 말하진 못했다. 안 그래도 아플 때는 서럽기 마련이고 해외에서 아프면 그 서러움은 배가 된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주변에서 줄줄이 소시지처럼 코로나가 확진되는 이 와중에도 그래도 건강이 최고니까 최대한 조심하고, 만약 걸렸더라도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니 몸조리를 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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