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더치 문화
네덜란드에 살며 네덜란드인 남자 친구와 사귀고 함께 산지도 벌써 4년 차이다. 세월 참 빠르다. 처음엔 그냥 공부만 끝내면 떠날 요량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정 붙이고 발붙이고 살게 된 것 같다. 내가 '더치 라이프'를 살며 종종 받게 되는 질문은 바로 더치페이에 관한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짠돌이이며 돈 한 푼까지도 십원 단위로 나누어서 낸다는데, 정말이야?
우선 '더치페이'의 어원을 먼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에 '더치페이' 자체는 한국으로 들어오며 변형된 말 같고, 사실은 영어로는 'going Dutch (더치로 간다)' 혹은 'doing Dutch'라고 한다.
'더치'라는 말 자체가 '네덜란드'라는 나라 이름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아예 둘의 연관성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종종 있다. 'Korea - Korean'처럼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의미를 살펴보면 똑같이 'Netherlands - Dutch'로 이어짐을 알아두자.
어원학의 관점에서는 17세기 영국-네덜란드 전쟁 (Anglo-Dutch war)으로 생겨난 팽팽한 긴장감, 경쟁, 적대의식으로 인해 영국 내에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교활하고 상스러우며 모욕적이라는 이미지가 유행하게 된다. 이때 생긴 영국과 네덜란드는 서로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관계는 지금도 영국인들이 술기운에 객기를 부리는 이들을 묘사할 때 "Dutch courage" - 네덜란드인들은 겁이 많아 술 몇 잔을 마셔야지만 용감해진다 - 라는 말을 쓰거나, 반대로 네덜란드인들도 영국인들을 묘사할 때 "파인트만 마셔대는 신사 인척 하는 야만인들"이라는 식으로 쓰인다. 사실 도긴개긴 같지만.
아무튼 그렇게 영국에서 형성된 'Dutch'의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교활, 겁쟁이, 짠돌이 등등이고 이것이 점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해서 전 세계적으로 그 의미가 알려졌다고 한다. 이렇게 알음알음 쓰이게 된 'Dutch ~'의 개념이 처음 지면으로 기록된 것은 1873년 더 볼티모어 아메리칸 (The Baltimore America)이라는 잡지에서 소개가 된다. 종종 술집의 주인들이 'Dutch Treat'의 하우스 룰을 제공하곤 했는데, 이는 각각의 손님들이 본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본인의 이름 아래 달린 장부에 한하여 마시게 하게끔 하는 규칙이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going/doing Dutch'의 의미로 확대가 된다.
사실 그 의미 자체만 살펴보자면 더치페이가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내 의견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친구들끼리 함께 식사를 하면 내가 먹은 것 마신 것만 돈을 내는 게 당연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면 술값에서는 제외가 될 수도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내가 그냥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함께 앉아있었단 이유만으로 아이스크림 값을 내야 한다면 억울할 것 같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십원 단위까지도 쪼개서 낸다는 것은 농담과 과장이 조금은 섞여있다고 생각이 된다.
물론 다 같이 가난한 학생인 시절에는 캠퍼스에서 파는 커피 한잔 (보통 1~1.50유로)도 아까울 수도 있고 그에 관해 티키(Tikkie - 한국에서 카카오 뱅크로 돈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비슷)를 보낼 수도 있다. 어쩌면 당연하다, 만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정말 쥐꼬리만 한 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친구들이다. 게다가 독립성의 이유로 용돈도 안 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혹은 다행이게도 내 경험상으로는 그런 친구는 없었다. 만에 하나 누군가가 내게 10센트 단위 티키를 보낸다고 해도 나는 그냥 웃으며 내가 다음 커피를 사다 줄 것 같다.
논란의 여지가 되는 연인 관계에서의 더치페이를 살펴본다면 이것 또한 상당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마다 다르고 경우마다 다르다. 나의 더치 남자 친구는 고맙게도 가난한 유학생인 나의 상황을 고려해주어 단 한 번도 더치페이를 요구한 적이 없다. 본인은 월급 받는 직장인이니 본인이 내는게 더 속편하단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아예 안 내는 것도 아니고, 나도 눈치가 있으니 내고 싶을 때 내고 여유가 될 때 낸다. 한 친구의 경우에는 두 명 다 네덜란드 사람들인데, 이쪽도 남자 친구가 다 낸다고 한다. 다른 친구는 스페인 - 네덜란드의 연애관계인데 무조건 반반이란다. 이탈리아 - 이탈리아 커플의 경우엔 나처럼 그때 여유가 되는 사람이 내고 영국 - 미국도 반반이라고 하니, 이 정도면 예시로 충분하려나. 사람마다 다르다, 정말.
개인적으로 더치페이의 의미가 성립되는 건 그 관계의 모든 이들이 모두 평등한 관계일 경우에 가장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권리의 평등만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물질적, 심지어는 심리적 관계까지도 평등한 경우에 가장 그 의미가 빛을 발한다는 게 요점이다. 경제적으로 한쪽이 훨씬 더 여유로운 상황에서 무조건 반반을 요구한다면 경제적으로 불리한 사람이 굳이 무리해가며 그 관계를 지속해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혹은 경제적으로 여유롭더라도 그 사람이 당시 심리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면 이번엔 상대방이 배려를 해주면 된다.
종종 온라인에서 연인 관계에서 더치페이를 하네마네 상당히 열기가 뜨거운 논란들을 보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그렇게 복잡하고 세세하게 십원 단위까지 반반 나누는 건 더 이상 사랑하는 연인 관계가 아니라 그냥 친구보다도 못한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 친구관계에서도 서로 배려는 한다. 나라면 내 친구가 상심을 해서 술한잔 하자고 부르면, 그냥 그날은 내가 쏜다. 그렇게라도 나의 위로를 표현한다. 그게 아니라 둘다 안정적인 상태에서 저녁을 먹는다면 그날은 더치페이를 하면 된다. 내 친구도 내게 똑같이 그렇게 해줄것을 알고 있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개인마다 의견차가 있겠지만 그것 또한 두 사람의 연애이니 그 두 사람이 잘 해결하면 된다. 이게 안 맞으면 안 만나면 되고. 간단명료.
전의 포스팅들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네덜란드 사람들은 실용성, 소박함의 문화를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짠돌이의 이미지가 말이 전혀 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생활이 점점 길어지며 단 한 가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건 문화는 문화일 뿐이지 일반화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쪼록 이 포스팅이 '더치페이'에 대한 의미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 일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