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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Mar 22. 2022

국제연애를 하기 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여러분은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며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아직도 나는 창창하다면 창창하고 혈기왕성한 나이이지만 그래도 지난 나의 20대 초반을 돌아보자면 가장 먼저 뒷골이 당긴다. 엄청난 사고를 치며 다닌 건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고,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 겁도 없이 갓 미성년자 타이틀을 벗자마자 혈혈단신으로 호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어서는 이 세상이 모두 핑크빛 심지어는 무지갯빛이라 여기며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고 사랑에도 너무나도 쉽게 빠지곤 했다. 그때 인신매매 같은 것 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이다. 게다가 창피하지만 그 당시엔 사랑이라 굳건하게 믿었던 남자를 따라 겁도 없이 지구 반대편까지 간 적도 있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 그 순간엔 사랑이라 믿었던 허상은 이내 실체를 드러내며 뼈저린 인생 교훈을 배우게 해 주었다. 나는 그렇게 허망하게 그 사람과의 연인관계였던 거진 3년을 날려 보내다시피 하며 그 나라에서 도망쳤다.


한국에서 나와 해외에서 살다 보면 네이버 같은 서칭 엔진보다는 구글이 더 친숙해진다. 특히나 나처럼 한국인이 별로 살지 않아 한국인들이 공유한 정보들이 잘 없는 나라에 살다 보면 네이버 같은 곳에 검색을 해도 단기적으로 머물렀다 가는 교환학생들이나 여행으로만 다녀온 정보성 글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현지에서 필요한 정보에 대해 그냥 구글에 영어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더 유용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쉽게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서칭 엔진을 꼭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바로 한식 레시피를 찾고자 할 때이다. 아무튼 내 요점은, 나는 한국 웹사이트에 도통 접속하질 않는다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우연히도 그 검색엔진 메인화면 한편에 "연애"라는 탭이 달린 카테고리가 열려있는 걸 발견했다. 메인 화면에, 그것도 그냥 연애가 아닌 "국제연애"였다. 두 사람 모두의 얼굴이 공개된 어느 한 블로거의 포스팅이 소개되었었는데 내용 자체는 아주 괜찮았고 나도 국제연애를 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많이 갔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댓글창으로 넘어간 순간 다시 뒷골이 지끈.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국인 남성에 대한 로맨틱한 로망을 가지고 너무 부럽고 남자분이 굉장히 "스위트"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포스팅 어디에서도 그 남자분의 "스위트"함을 다룬 내용이 없었고, 오히려 문화 차이에 대한 어려움과 그를 어떻게 극복했느냐에 대한 내용이 중점이었는데도 말이다. 해외에서 웬만히 살아본 사람들은 알 거다. 이 댓글들의 내용이 정말 그냥 환상 그 자체란 걸.


그분들을 질책하려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니다. 나 또한 외국인 남성과의 로맨스뿐만 아니라 그냥 해외생활 자체에 상당한 환상을 가졌었다.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아름다운 외모의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송이 장미처럼 여겨지는 나.... 는 나중에야 알고 보니 그냥 엑스트라 중 한명일뿐이었다. 심지어는 차라리 엑스트라인 게 낫다 싶은 게 분명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파라다이스 혹은 유토피아처럼 묘사되는 곳에 살면서 인종차별이니 성차별이니 별의별 일을 겪다 보면 그냥 뒷배경으로 남는 게 낫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그냥 이곳에서도 오늘 하루도 어찌 살아내려고 노력 중인 거다.


그 포스팅의 댓글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장문의 댓글을 남긴 그녀의 요지는 본인이 지금 "외국인"남자랑 "사귀는"중인데 본인을 상당히 헷갈리게 하여 힘들다는 것. 그리고 원래 "서양 남자"들은 다 이런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아이고. 이분을 어떡한다.




내가 어디가 잘나서가 아니라, 정말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소망하며 글을 쓰기로 했다. 자랑은 절대 아니고 (나는 심지어 이 사실이 부끄럽다) 나는 지난 10년간 대략 10개국의 출신 남성들과 하룻밤, 데이트, 혹은 장기적 연애 관계를 가진 바가 있다. 그 10개국의 남자들은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대륙 출신들로 아주 다양했다. 아마도 그때는 너무 외롭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었으며, 겁도 없었고 그냥 아무것도 몰랐다, 가 가장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알리는 것은 나 또한 이 경험들로 인해서 배운 점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1. 국적불문 남녀노소 관심 = 시간 = 노력

"서양사람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그런지 내 연락에도 오랜 시간 동안 반응이 없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서양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하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은 맞지만, 연인관계에서까지 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잠수를 탈 만큼까지는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연인관계가 된 이상 나도 그 사람의 '사생활'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 차이를 넘어서 인간관계에서 전체적으로 적용되는 전제 중 하나는 내가 관심 있고 아끼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아무리 개인주의적이고 아무리 본인의 시간을 중요시해도 관계에 대한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간단하게 말해서, 그는 당신에게 그만큼의 관심 혹은 그만큼의 시간을 쓸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비슷한 예시로 "Getting to know단계여서 그런지 나를 헷갈리게 한다"라는 경우가 있다. 이도 간단명료하다. 그 사람이 당신을 정말 아낀다면 '헷갈릴 이유'를 전혀 만들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행복 회로를 돌려도 미안하지만 정말 이게 사실이다. 


2. XX나라 남자는 어때? 가 말이 안 되는 이유

서양 남자들은 어때? 외국 남자들은 어때? 유럽인들은 어때? 네덜란드 남자들은 어때? 내가 정말 가장 난감하게 느끼는 질문들이다. 왜냐하면 입장 바꿔 생각해봐서 누군가가 "한국 여자들은 상당히 XX이라는데, 어때?"라고 묻는다면 난 당연히 콧방귀를 뀌며 "그야 사람마다 다르지"라는 대답밖에 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도 지역마다 특징이 다르고 그 지역 안에서도 가족마다 다른데, 특히나 '서양'이나 '외국'이나 '유럽'이라는 광대한 범위에서 우리가 어찌 한 개인을 일반화할 수 있는지 자체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겪고 있는 그 상대방은 본인만 제일 잘 알 수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XX국 남자들은 어떠한지 조언을 얻는 대신 본인이 상대에게 진솔하게 물어보는 게 더 확실하고 효율적이다. 


3. 언어, 문화 차이의 강력함

가끔 연애를 통해 영어나 외국어를 배웠다는 사례들을 본다. 비난하거나 비판하려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그런 사례들을 볼 때마다 갸우뚱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연애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지 한 번쯤은 다시 고찰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의사소통은 밥 먹었는지 뭘 했는지를 넘어서 자신의 가치와 신념 등의 깊은 대화까지를 의미한다. 가벼운 연애관계가 아니라면 나의 인생을 일부 공유하는 상대방과의 깊은 대화는 당연히 필요하다. 물론 사랑의 힘!으로 언어를 배울 순 있겠다만 그 단계까지는 수평적 관계가 아닌, 그 언어를 못하는 내가 그 언어를 할 줄 아는 상대 (원어민)에게 의지하게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레스토랑에서조차도 내가 원하는 메뉴를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주문해주길 기다려야 한다니. 나의 주체성은 어디에?

언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다음으로 따라오는 게 바로 문화 차이이다. 이것은 일반화랑은 다른 개념으로, 여기에서의 문화는 본인의 출신 국가의 문화 더하기 그 사람이 말 그대로 자라온 환경에 대한 문화인 것이다. 그러니까, 좀 더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문화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이 자기 가족들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는지, 본인의 친구들이 얼마나 본인에게 의미가 있는지, 의사소통의 방식이 직설적인지, 소비문화를 어떻게 지향하는지, 식습관이나 사회생활을 어떻게 여기는지 등등 그 목록은 끝이 없이 이어질 수 있다. 이 다른 개인의 문화에서 쉽게 '일반화'의 굴레에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것 또한 언어가 통한다는 전제 하에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4. '사랑'을 믿고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의 위험성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은 위대하지만 그만큼 흔치 않다. 인간이라는 게 참 얄팍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금방 연약해지기도 한다. 그 원인으로는 재정상태, 인간관계, 커리어, 자유, 책임감 등등이 있는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은 사랑을 믿고 떠난 순간 상당히 연약한 상태로 노출이 된다. 상대방의 직장을 따라서 나의 재정상태, 인간관계, 커리어를 모두 포기한 채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떠나면 그 상대방은 나를 그만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게 당연하다. 한 사람의 수입으로 먹고살 순 있어도 주변의 지인, 행동반경까지 모두 그 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면 이는 자유의 상실과 다름없다. 슬프게도 이는 모두 내 경험에서 배우게 된 것들이다. 


4.1. 그럼에도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반드시 확실히 해야 할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고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별것이 없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으로 떠나기로 했다면, 반드시 확실히 해야 할 것들이 있다. 4번의 항목과 이어진다. 

첫 번째는 재정적 독립성이다. 굳이 엄청난 수입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 재정적으로의 독립은 곧 본인의 자유라는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파트너의 수입으로 생활비를 써야 한다면, 그리고 본인이 엄청난 재력가가 아니라면 결국엔 내가 입을 팬티 한 장까지 말 그대로 눈치를 보게 된다. 왜? 따지고 보면 결국엔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독립성이다. 파트너의 친구가 곧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게 가장 쉽기 때문에 가장 흔히 그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공부나 일을 하지 않는 상황이면 더 쉽다. 파트너는 금요일 밤 친구들과 술 한잔 하러 나간다는데 나는 파트너가 집에 없는 순간, 연락이 없는 순간 홀로 남겨진다. 상당히 답답하다. 나의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을만한 파트너와의 공통 친구가 아닌 나만의 친구가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위안이 된다. 안 그래도 힘든 해외생활, 기댈 곳 한 곳 정도는 더 있으면 당연히 좋다. 


5. 외국에서의 연애는 언제나 외롭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외생활을 처음 해보는 분들, 특히 여성분들이 가장 쉽게 하는 실수가 바로 연애전선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그 시작은 아주 번지르르하다. 문화도 배우고, 언어도 배우고, 연애도 하고, 일석 삼사조는 되어 보이는데 사실 그 실상을 알고 나면 그다지 핑크빛은 아니라는 거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와 비슷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택한 해외살이가 결국엔 상대방 위주로 돌아가게 된다. 친구도 그 사람을 통해 사귀고, 취미도, 음식도, 가는 장소도 그 사람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다. 나의 취향은 점점 사라진다. 내 취향이 있긴 했던가? 취향을 갖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를 하게 되어버렸으니, 취향이 없는 게 당연하다. 연애의 극초반 시기가 지나면 점점 나는 저절로 '을'의 연애를 하게 된다. 아무리 설명해주려고 해도 특히나 파트너가 그 나라의 현지인이라면 도저히 이해해줄 수 없는 외로움과 서러움에 버둥거리며 왜 챙겨주지 않냐며 '찡찡'거리는 나를 발견한다는 건, 비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차라리 마음 맞는 친구를 빨리 사귀는 게 제일 현명하다.




현재는 연애관계 포함 나의 삶 자체가 처음 해외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에 비하면 아주아주 안정적이다. 당연히 오랜 시간, 돈, 에너지를 낭비하여 힘들게 배우기도 했고 이젠 나도 철이 나름 들어서 전만큼 순진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안 좋게 말하면, 찌들 대로 찌들었단 얘기다. 


나의 현재 연애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앞서 설명한 5가지의 조건을 나는 모두 만족시켰기 때문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복잡하게 재단하지 않고 나를 헷갈리지 않게 하는 사람과 만나며 나의 재정적, 사회적 독립성, 거기에 더해 언어와 문화 차이를 인정하고 직설적인 의사소통으로 극복했으며 남자 친구보다도 더 마음과 취향이 잘 맞는 친구들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매해 명절 파트너의 가족들에 둘러싸여 있노라면 나도 한국에 가족이 있는데, 라는 마음에 아직도 종종 외로워지곤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상당히 회의적인 내용이 되었는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다른 그 누구도 내가 한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길, 상처를 받지 않길, 어딘가에 있을 그 사랑을 찾아 계속 도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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