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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Apr 25. 2022

네덜란드에서 인종차별에 맞서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인종차별에 관하여

현생이 바빠지고 졸업논문 준비에 파트타임, 풀타임 투잡을 해가며 총 쓰리잡! 을 하는 바람에 브런치에 업로드가 잠잠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내 파트너는 토종 네덜란드인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소도시라고 해봤자 인구 밀집도가 높은 한국인의 눈에는 읍면리.. 수준의 작은 마을 정도로 여겨지는데, 그에 걸맞게 이 사람은 자라면서 초중고등학교까지 모두 같은 학교를 함께 진학했던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게다가 워낙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 더해져 이 절친 그룹은 장장 20명이 가까이 되는 대형 그룹이 되었다는 게 문제지만... 이 20명 가까이 되는 남성들은 소그룹으로 쪼개져 일주일에도 몇 번씩이며 만나는 엄청난 우정을 자랑하는 사이이다. 이 그룹의 중심에 서있는 내 파트너가 지난 주말 생일을 맞았다. 아무래도 모두를 초대할 순 없어서 추리고 추려 사절단처럼 반절로 인원수를 줄여야만 했다. 그래 봤자 10명 이상이었지만 그래도 20명보다는 나았다. 레스토랑에 대형 테이블을 예약하고 그룹 메뉴를 주문해가며 즐거운 생일을 보내고 있는 찰나에, 레스토랑 측에서 생일을 축하한다며 작은 촛불과 술 한잔을 보내왔다. 촛불을 보는 순간 나는 "생일 축하" 노래를 영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 day to you, Happy birth day dear my love..."


식당의 모두가 다 함께 불러주는 생일노래에 쑥스럽지만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 모든 것을 준비한 게 뿌듯해지려는 찰나에 노래의 2절이 시작된다.


사진만 봐도 벌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도지는듯한...

"항키 팡키 상하이~ 항키 팡키 상하이~" 


나와 파트너를 제외한 모두가 이 말도 안 되는 중국어를 빙자한 인종차별이 듬뿍 담긴 노래를 내게도 무척이나 친숙한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반복되는 가짜 중국어에 이어 뜬금없이 상하이의 이름이 따라온다. 그에 끝나지 않고 몇몇의 사람들은 찢어진 눈을 흉내 내는 제스처를 취한다. 모두들 술기운에 올라 이제 3절을 시작하는데 그 3절은 이제 가짜 러시아어이다. 이 사람들, 제정신인가?


솔직히 이 노래의 존재를 아예 몰랐던 건 아니다. 현재는 다행히도 이를 멈췄다고 하지만 최근까지도 네덜란드의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줬던 공식적인 생일 축하노래이다. 이를 부르며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란 동양인 2세들은 이 노래를 뜻도 모른 채로 함께 부르기도 했으며, 어느 정도 머리가 자라고 나서는 이게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엄청난 치욕을 느끼게 된다. 농담과 장난을 가장한 악명 높은 인종차별의 대표적인 유형임을 나도 온라인에서 종종 사례를 읽기도 한 적이 있고, 경험담 등을 들었던 적이 있어서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나와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입을 모아 이 노래를 합창하는 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다시 한번 이들에게는 난 그냥 하찮은 동양인들 중 하나일 뿐이구나, 순간적으로 숨통이 꽉 조여왔다.




사실 인종차별을 처음 겪어본 것도 아니다. 맨 처음 해외생활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쌈닭처럼 조금이라도 인종차별의 언질이 보이면 미친 듯이 달려들곤 했었다. '어, 이 사람 왜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내가 동양인이라 그런가?' 따지고 따져서 얻어내는 거라곤 그 사람들이 심심찮은 사과와 더불어 나만 미친 X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게다가 그 결과로 사람들, 심지어 경찰과도 다툼을 가지고, 신체적인 싸움에 휘말릴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놀랍게도 그 쌈닭 기질도 많이 풀이 죽고 나도 많이 부드러워졌기에 웬만한 상황이 아닌 이상은 길거리에서 듣는 칭챙총 정도에는 '에휴, 못 배운 것들이라 그렇지. 불쌍하다'라며 자기 위안 아닌 자기 위안을 삼은 채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좀 정도가 심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이것들이 날 무시하나, 싶은 생각에 분노에 휩싸였다. 파트너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시작하자마자부터 그들을 제지하려고 했으나 눈치 없이 계속되는 노래 행렬에 한번, 싸해진 나의 표정에 한번, 안절부절못한 지 오래다. 노래가 끝나고 잔들을 올리며 "Proost! (건배!)"를 외치는데 나는 그냥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냥 무시할까, 괜히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나서서 분위기 망치면 어쩌지, 오히려 더 주목받게 될 텐데,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하지, 나만 조용히 있으면 다들 좋은 시간을 가질 텐데... 괜히 그러는 건 아닐까? 슬프게도, 차별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해봤을 만한 생각들이다.


생일 당사자인 파트너가 나의 안색을 살피느라 건배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찌 되었건 스포트라이트는 내게로 옮겨졌다. 치욕스러움과 더불어 이놈의 눈물이 괜스레 터질 것만 같아서 더 수치스러웠다. 애써 갈라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너희들이 부르는 그 노래,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다고. 특히 지금 이 순간 이 전체의 공간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으로서 몹시 불편하고 특히나 눈 찢어지는 제스처는 용납할 수가 없다고 했다. 순간 정적이 흐르다가도 역시나, 본인들은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온다. 본인들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그걸로 너희들은 이 노래를 다시는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내게 차례차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네덜란드에 살다 보면 종종 네덜란드인들이 직접 본인들의 입으로 얼마나 자기네들이 공평하고 평등하며 열린 마음의 사람들인지를 어필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너희같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 이곳의 언어를 할 줄 알고 문화가 뼛속까지 새겨진 사람들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반응한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본인들의 입으로 나불대는 건지. 


네덜란드의 출신 통계, 맨 오른쪽부터 총 인구수 - 네덜란드 출신 - 이민자 출신. 세 배 가량 차이난다. (출처:Statista)

미국, 캐나다, 호주같이 다문화 정책이 오래전부터 시행된 나라들과는 달리 유럽은 아직도 한가지의 인종, 즉, 백인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의 혈통을 유지한 순.수.혈.통.의 비율이 아주 높다. 그래서 그런지 경험상 호주에 살때보다 더 은근한 인종차별을 더 겪게된다. 적어도 호주나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건 잘못되었다'라는 인식이 있는 반면에 유럽에는 아예 그런 인식조차도 없는 기분이다. 그 흔한 '칭챙총'도 유럽에서 수없이도 들었다. 따지고 물어보면 그냥 자신들은 친근함의 표시였단다. 다른 영어권 국가들에선 용납되지 않는 이런 소소한 인종차별들이 너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물론 어딜 가나 멍청한 사람들은 존재하고 인종차별을 할 사람들은 아시아인이건 흑인이 건에 상관없이 인종차별을 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내가 속상했던 건 그래도 정말 내가 친구라고 여겼던 이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는 거다. 그렇게 재미있어야 할 생일은 결국 나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된 채로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 내내 눈물을 흘리는 내게 미안하다는 파트너를 보니 더 원망스러웠다. 네 친구들, 정말 왜 이래? 일이 년도 아니고, 4년이나 함께하며 그와 가까운 만큼 나도 그 친구들을 자주 만나곤 했었는데..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직까지도 진정이 되지 않는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데 책상에 꽃다발이 배달되어있다. 뭐지? 싶어 카드를 열어보니 그 생일노래를 주도한 친구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사과 편지와 꽃다발을 주문했다. 편지 내용은 뭐.. 예상이 가다시피 자신들은 그 노래가 그렇게 무례한 줄 몰랐으며 본인들이 학교에서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나온 반응이었다,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거고 내가 그 자리에서 말해줘서 고마웠으며 다른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한다면 자신들이 이제는 뭐라고 해줄 거라는 등등... 


자리에 서서 카드를 읽는데 참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종차별을 겪을 때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벽에 수없이도 부딪히는 기분이다. 악의 없는 농담이었어도 나는 이제 또 몇 날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은 "예민한"상태로 지내게 될 것이다. 나 좋자고 한국을 떠나게 되며 얻게 되는 자업자득인 건가 싶기도 하고.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적어도 내 인종 때문에 차별받진 않았을 텐데, 싶다. 나는 이렇게 또 한 발자국 네덜란드와 멀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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