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졸업
공백기가 너무 길었나, 브런치 어플을 비롯해 메일, 브라우저 등에서도 꾸준한 연재를 독촉하는 알람이 계속 왔다. 지쳤다거나 번아웃이 왔다거나 그런 어마어마한 건 아니고 그냥 글을 굳이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영업사원으로서 첫 번째 인턴십을 끝내고 같은 회사에서 두 번째 인턴십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영업사원이라기보다는 회사 경영에서의 문제점을 찾아내서 그 해결책을 연구해 그것을 졸업논문으로 작성하는 것이 큰 프로젝트였다. 입학하기도 쉬웠고 지난 3.5년간도 나름 공부가 수월했는데, 마지막 6개월이 날 이렇게까지 피말릴 줄은 몰랐다. 이래서 졸업하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 건가.
장장 6개월을 쏟아 써 내려간 졸업논문은 90장에 달하는, 내 열과 성을 다했지만 남들에게 설명하고자 하면 고리타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통제하는 것과 계획하는 것에 강박 아닌 강박이 있는 내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불확실성이었다. 지도교수님이 계셨지만 일주일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바쁜 스케줄에 원칙상 대놓고 내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게 그의 반응이었기 때문에 불확실함에서 오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듯했다.
딱히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수업이 없으며 그룹 프로젝트가 없다는 게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마치 나 홀로 외딴섬처럼 나만의 장기 대형 프로젝트를 혼자서 추진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봐도 모두들 주제가 달라서 굳이 비교할 수조차도 없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마지막까지 테스트하려는 학교의 의도 같았다.
마감기한 하루 전까지 나는 열 손가락의 모든 손톱이 너무 짧아 아플 정도로 뜯겨 있는 상태였다. 불안감이 너무 높아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무얼 하든지 간에 이러다 낙제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주변에서 아무리 괜찮을 거라고 독려해도 불안이라는 감정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서 그 독려까지도 짜증으로 받아치곤 했다. 그렇게 마침내 제출 버튼을 누른 뒤까지도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한바탕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스트레스로 초긴장상태였는지 너무 피곤해서 금방 너부러져버렸다.
졸업논문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관문을 준비했다. 졸업논문을 지도교수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마지막 관문이었는데 이쯤 되니 "설마 발표로 낙제시키진 않겠지"싶은 마음이 들어 설렁설렁하려는 욕구가 팍팍 생겼다. 지난 반년 간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였던 것 같다. 다행히도 무사히 프레젠테이션을 마치자마자 점수를 발표한다길래 당황했다. 결과는 졸업 확정.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달콤 씁쓸하기도 하고 진부한 표현을 다 갖다 붙여도 표현이 되지가 않는다. 앉아서 지도교수들의 피드백을 듣는데 뭔가 울컥해서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당황한 교수님들은 울지 말라며 달래주시기 바빴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잘 견뎌온 나 자신이 기특해서 감정이 격해진 것 같았다. 수능을 망치고 재수가 아닌 해외도피를 택했을 때, 주변 선생님들이 "지금은 도피할 수 있겠지, 근데 언제까지 도피하며 살래?"라고 한말이 둥둥 떠오른다. 그 발언에 발끈했던 것도 잠시 나는 정말 그 사람들의 말처럼 20대 초반 약 2-3년 동안을 도피하고 방황하며 살았다. 여행이라는 번지르르한 포장 아래 그냥 하염없이 부유하기만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선택들과 그렇게 만난 사람들, 그렇게 얻게 된 귀중한 기억들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그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와서 드디어 대학 졸업장을 따기까지의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아무리 도피하고 낭비했으면 어떠랴, 다들 다른 속도로 갈 뿐이니 괜찮다. 하지만 그저 '내가 한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홀로 지새운 날들과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들, 그리고 마지막 반년의 불안이 서러움으로 들이닥친 것만 같았다.
어쨌든 졸업이다. 네덜란드 정부와 유럽연합에서 인정한 학위가 있다. 이 종이 한 장이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줄 거란 기대는 없다. 그래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해외생활을 증명할 훈장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장하다, 잘했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