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 고양이엄마가 되기 전까지
"나는 고양이보단 강아지파야, 고양이들의 그 특유의 새침함이 별로거든. 강아지들을 봐, 하루에 널 백번을 봐도 그 백번을 모두 다 기뻐서 어쩔줄 모를걸? 그 충성심은 또 어떻고. 너무 좋아. 강아지들 최고야."
내 기억이 최대치로 닿는 내 유년시절부터 나는 개들과 함께 자라왔다. 뒷마당이 있던 삼룡슈퍼를 운영하던 우리 부모님은 황구와 백구를 한마리 씩 키웠었는데, 이름은 미미와 쥬쥬였다. 수컷이었는지 암컷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나이 당시 4~5세. 모든 귀엽고 멋진 것엔 공주인형 이름이 붙는게 진리였다. 진돗개는 아니었던것 같고 아무래도 진도믹스견이었던것 같은데. 슈퍼를 운영하느라 바빴던 젊은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와 나를 지켜주던 든든한 견공들이었다. 삼룡슈퍼가 문을 닫게 되고 모든것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미미와 쥬쥬도 어디론가 떠나버렸는데, 아빠 말로는 시골에 사는 친구에게 줘버렸단다. 며칠 내내 얼굴이 다 부르트도록 울었다. 미미야, 쥬쥬야. 잘 살다가 갔길 바란다. 너무 미안하다. 그땐 나도 어려서 뭐가 뭔지 몰랐어. 많이 고마웠어.
그러다 10살, 새로 이사온 내인생 최초의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엄마, 아빠 를 조르고 졸라 가정분양으로 작은 요크셔테리어 강아지를 얻게 되었다. 당시 학원차량 운행기사로 직업을 바꿨던 아빠가 타고 다니던 흰색 봉고차에 타서 언니와 나란히 앉아 엄마가 그 강아지를 데리고 오기만을 기다렸던게 생각이 난다. 우리는 이름을 정했다. 곰지. 곰 닮은 강아지. 곰지는 새까맣고 윤기나는 털에 갈색 주둥이와 귀끝을 가진 너무 작은 강아지였다. 우리 곰지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13년을 살다가 떠났다. 심지어 그 마지막 3년은 내가 한국에 없었던 때라, 많이 예뻐해주지도 못했으며 늙어가는 곰지가 날 잊지만은 않기를 바랐었다. 어느날, 평소에 잘 연락도 않던 언니와 엄마가 차례대로 급한일이라며 문자를 보면 곧장 답장을 하라고 줄줄이 메세지를 보냈다. 곰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엉엉 우는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나도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 곰지야, 너무 미안하다. 하늘나라에서 미미와 쥬쥬도 만났니? 아직도 나는 곰지 이름만 꺼내도 눈물이 난다.
그렇게 나는 강아지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길을 걷다가도 강아지를 보면 눈이 휙휙 돌아가고 나도 모르게 돌고래같은 "꺅!" 소리를 질러 같이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고양이파보다 강아지파인걸 괜스레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도 했다. 덱스터를 만나기 전까진.
작년 9월, 같이 살던 남자친구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자가로 구매한 (짝짝짝, 대견한 우리!) 더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나눴다. 둘다 반려견들과 함께 자라온 터라 처음엔 무조건 강아지를 입양하자고 목놓아 주장했다. 남자친구는 완고했다. 안돼, 우리 직장 스케줄을 봐. 강아지한테 못할 일이야. 그가 맞았다. 남자친구는 공직에서 근무하는데, 때때로는 아침 5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면 집에 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오후 3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들쑥날쑥한 스케줄을 자랑했다. 나도 역시 당시 파트타임 스케줄로 불규칙한 스케줄을 갖고 있었기에 어린 강아지가 집에 하루종일 있어야할 시간이 많을거라고, 하루에도 산책 세번씩 시켜줄 엄두가 나냐고. 남자친구는 물었다. 다 맞는 얘기인건 아는데. 그래도.. 난 강아지가 좋단말야.
"고양이는 어때? 고양이는 독립적인 성향이 더 강해서, 더 나을수도 있어."
"어우, 고양이는 좀...그래! 좀 소름끼치는 경향이 있어 나는, 고양일 보면"
덱스터가 이 글을 읽지 못하는게 천만 다행이다, 아니었다면 덱스터가 섭섭해했을 정도로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가진다는것에 대한 반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보여준 사진도 내 눈에는 별로 안귀여웠다. 이상하리만치 지나치게 큰 귀와 큰 눈이 내게는 외계인을 연상시켰다. (전국의 애묘인분들 죄송합니다!! 지금은 아기고양이라면 껌뻑 죽어요). 남자친구는 그 사진을 보고 홀딱 반해 반신반의하는 나를 제쳐두고 덱스터를 가정분양으로 데려왔다. 어? 가정분양..? 우리 곰지도 가정분양으로 데려왔는데.
그렇게 우리집에 오게된 덱스터는. 너.무.예.뻤.다. 마침 덱스터를 데려온 시기에 네덜란드는 락다운봉쇄령이 발령됐고, 파트타임으로 다니던 직장도 단기적으로 문을 닫게 되었고 학교도 모든것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남자친구 마저도 파견으로 리투아니아에 4개월동안 가게 되었다. 그렇게 덱스터와 나만이 남게된 새 집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