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여행의 매력
비행기표를 연장한 까닭에 한 달이라는 여유가 생긴 나는 앞으로의 행선지를 정해야 했다. 남미를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멕시코라는 나라를 좀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모든 걸 계획하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하루를 시간과 분 단위로 쪼개기도 하고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계획을 차근차근 짜놓고 차근차근 계획에 맞혀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런 나에게 계획 없는 갑작스러운 한 달의 연장은 낯선 일이었다. 일단 비행기표를 연장했지만 어디를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정보없이 급하게 모든걸 결정해야하는 상황은 낯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직을 할지, 퇴사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고, 어떤 장소에 갈 지 무엇을 할지도 어느정도 계획을 잡고 여행을 시작했었다. 그 계획에 따라 멕시코에 들어오기 전 한 달 동안 캐나다에서는 철저하게 혼자의 시간을 보냈었고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며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게을렀다. 익숙지 않은 나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귀찮음과 게으름의 중간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나쁘지 않았다. 초반에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걸까 에 대해서 걱정과 조바심이 들곤 했지만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하며 다독거렸다. 간혹 익숙해진 나태의 시간들이 한국에 돌아간 후 사회부적응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것 또한 잠깐이었다.
나는 나태하고 게으른 멕시코에서의 삶에 익숙해졌다.
생각해보면 혼자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나름 적지않은 여행을 다녔지만 친구 라던지, 가족 이라던지 누군가와 늘 함께했었다. 처음 혼자 하는 여행의 설레임과 즐거움은 일주일이었고 이주일이 지났을 때는 외로웠었다. 특히 여행의 초반 한 달 동안은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기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시간을 보내는 함께의 시간이 나에겐 필요했다. 하지만 외로움의 시간에 곧 익숙해졌다. 삼주일이 지났을 때는 혼자가 편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어느 조직의 구성원으로 늘 시간을 보냈던 한국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나는 매우 예민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활은 즐겁지만 늘 관계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나에게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신경을 쓰는 예민함을 줄여주는 대신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을 주었다.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떤 상황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어떤 공상을 즐기는지.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남은 한 달의 시간 동안 멕시코란 나라를 좀 더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잠시 근처 다른 나라를 갈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연장 전의 계획대로라면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내려가 플라야 델 카르멘을 둘러보고 칸쿤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칸쿤 공항에서 다시 멕시코 내륙으로 올라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결국 멕시코를 두 바퀴 도는 루트였다. 멕시코를 여행하는 자들에게는 흔하지 않은 루트다.
계획하지않았던 시간이 늘어나 돈도 두배, 이동 경로도 두배가 되었지만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보고싶은 것, 하고싶은 것, 가고 싶은 것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