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눈 오는 길
눈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저벅저벅 걷다 보면 나마저도 눈 쌓인 풍경의 일부가 된 것 같아 제법 상쾌하기까지 하다. 소복히 내린 눈이 모난 곳 없이 모두 하얗고 둥글게 만들어준 풍경.
어느 날은 눈이 쌓이지 못하고 비어버린 자동차 자국을 마주쳤다.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케이크에서 딸기만 집어먹은 모양새가 떠올라 귀엽기도 했지만, 가만히 보고 있는 새 쓸쓸해졌다. 내가 아는 상실과 부재의 모습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부재는 단순히 없는 것이 아닌 “없음의 있음”이라, 있었던 그 자국이 남아있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없다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한다. 눈 쌓인 곳에서 떠나가버린 자동차의 자국마저 자동차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는다.
나는 이런 상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1. 무언가로 덮는다.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눈이 녹으면 오히려 눈에 띌 수 있다.
2. 눈으로 덮일 때까지 기다린다.
무난한 방법이지만 가장 고통스럽기도 하다. 언제 어떻게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다른 자동차를 가져다 둔다.
언뜻 좋아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교집합 외의 모든 것이 눈에 띌 것이다.
4. 다른 것을 가져다 둔다.
표지판을 세워두어 이 자리는 원래 비어있는 것처럼 나를 속여볼 수 있을 것이다.
5. 눈이 녹을 때까지 기다린다.
마음이 모두 녹아내려 그것이 비어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
나는 눈이 녹기만을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겨울은 계속 돌아올 것이고, 눈 오는 길을 걷다가 또다시 빈자리들을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도 나는 겨울을 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