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141_ 싫어하던 과목

by 벼르

지금은 동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어릴 때 초등교사가 되고 싶어했던 첫 이유는 좋아하는 과목도, 잘하는 과목도 두루두루 많아서였다. 그만큼 관심사도 다양하고 재미있어하는 수업도 많았지만 그런 내가 기피하는 딱 한 가지 과목이 있다면 체육이었다. 운동을 꽤 즐기는 사람이 된 지금 이 사실을 돌아보면 조금은 생경하다. 그런데 어제 체육실기지도 시간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왜 체육을 싫어했는지 실마리를 얻었다.


딱히 내 운동기능이 떨어진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어제 자기소개서에는 본인의 운동기능에 대해 10점 만점으로 평가해보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나는 6점이라고 적었다. 힘은 9점, 지구력도 9점, 유연성은 8점, 순발력과 민첩성은 1점이다. 정확한 동작을 익혀 모방하는 능력도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데 운동 선수나 춤꾼이 아니고서야 건강에 필요한 항목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운동기능' 자체에 크게 반영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순발력과 민첩성이 필요없는 운동을 찾아서 하다 보니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학생 시절 체육 시간에는 도무지 즐질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수행 평가 종목이 나에게 약한 능력들을 요했기 때문이다. 축구공을 빠르게 드리블해서 장애물 사이로 이동한다거나 정확한 동작으로 레이업 슛을 한다거나, 남들은 쉽게 해내는 일을 나는 놀랄 만큼 못했다. 더 빠른, 더 높은 기록을 재는 종목은 말할 것도 없다. 오로지 근지구력만을 측정하는 연속 윗몸 일으키기나, 오로지 유연성만을 평가하는 앉아서 손 앞으로 뻗기 같은 평가에서는 늘 만점이었다(아쉽게도 힘만을 평가하는 수행 평가 종목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외에는 거의 기본 점수만 받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정체성을 형성하던 시기에 한 번 못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과목을 다시 좋아하게 되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경쟁을 지독하게 싫어한다. 누군가가 보면 정시로 서울대에 입학했던 사람이라 경쟁을 즐기고 심지어 거기에서 승리했다고 인식할 수도 있겠으나 정작 나는 입시를 경쟁으로 인식하지 않았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저 시험지를 받았을 때 모르는 문제가 하나도 없도록 하는 일, 문제 푸는 시간을 단축해 실수를 검토할 시간이 충분하도록 만드는 일이 나의 목표였다. 학원에서 등수가 언급되는 일은 (설령 1등이라서 언급된 것일지라도) 끔찍했다. 그런 나에게 대부분의 구기 종목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특히 피구처럼 누군가의 눈을 마주보고 공을 던져 그 사람을 직접 탈락시켜야 하는 게임은 생각만 해도 울렁거린다. 제대로 하면 상대 팀에게 미움받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빨리 탈락해 버리면 우리 편에게 미움받는 모순. 나는 학창 시절에 피구를 하면서 공을 거의 만져본 적이 없다. 잡기도 맞기도 무서워 피해다니다가 최후의 일인이 되면 결국 내가 공을 잡아야 하므로, 나는 항상 남은 아이들의 수를 헤아리다 서너 명쯤 남았을 때 일부러 공을 맞고 아웃되었다. 딱 그 정도가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면서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선이었다.


사실 체육 선생님들의 딜레마도 이해한다. 체육 수업에 경쟁을 도입하면 아이들이 쉽게 과몰입하는데, 그 모습은 흡사 무지하게 재미있어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어떤 아이들은 경쟁에 몰입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겠지만,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긴 하기 때문에 원활한 진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경쟁 없이 건강한 운동을 해서 체력적으로나, 자세에서나 어떤 부가적인 효과를 얻게 되는 일은 어른이라서 가능하다. 운동을 했더니 무릎 통증이 사라진다거나 체력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사건은 미성년자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차피 안 아프고 체력은 무한정으로 생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루한 운동은 시켜봤자 효과를 체감하거나 지속할 동기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다시 경쟁적 요소를 도입해 누가 누가 더 빨리 뛰나, 어느 팀이 더 잘하나 방식의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내가 교사가 된다면 경쟁도 소외도 없이 즐겁게 몸을 쓰는 체육 수업을 만들고 싶다고 남몰래 꿈꾸곤 한다. 단체 놀이라거나 창의적으로 몸을 써서 동작을 만든다거나,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도 소수의 아이들이 괴로워하지 않을 수업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수업을 구성하는 데에 약간은 품이 더 들겠지만, 나같은 체육 포기자를 양성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훨씬 크다. 수학 포기자가 대학 때 수학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건 인생에 큰 해가 되지 않지만, 체육 포기자가 어른이 되어 운동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려고 외면하는 건 건강에 큰 지장을 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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