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142_ 여름 밤

by 벼르

8월의 마지막 밤에 나는 이유 없이 울적하다. 허물어져 가는 여름에 선선해진 밤 공기가 가을의 기웃거림을 알리기 때문이다. 2월의 마지막 날에는 아직도 겨울이라는 듯 단호하게 추운데 여름의 마지막은 떠날 채비가 더 잘 보인다. 어쩌면 겨울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2월의 끝자락도 봄기운처럼 느껴져 아쉬울까 싶기도 하다. 아니, 봄기운이 아쉽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나? 있다면 나에게는 정말 신기하게 느껴질 사람이다.


여름을 사랑하지만 사실 한낮의 열기보다는 태양이 가라앉고 나서의 시간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여름을 좋아한다고 하면 물놀이라거나 수박, 이글거리는 도로 위의 드라이브 등을 좋아하는 건가 하고 전형적인 여름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여름만 되면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태양은 내 피부를 유독 괴롭히는데 나는 산책을 좋아하기에 밤에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시즌을 좋아한다. 그런데 또 추위도 많이 타서, 밤에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계절은 여름뿐이다. 그리고 복작한 소리를 싫어하면서도 지나치게 고요하면 무서워해서 여름 밤의 적당한 고요함이 딱 좋다. 곧 밤이 되면 추워서 걷기도 어렵고, 바람이 마음의 맨살까지 시리게 하는 계절이 오는 게 무서워서 여름의 끝자락을 아쉽게 붙들고 있다.


8월의 마지막 여름 밤이 이렇게 선선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몇 년 전에야 알았다. 8월이면 내 관념 안에서는 무조건 여름이어서, 괜찮겠거니 하고 워터파크 일정을 잡았는데 일단 낮부터도 충분히 뜨겁지 않아서 고역이었다. 몇 시간 놀지도 못하고 온탕 쪽만 전전했다. 저녁 무렵 젖은 몸으로 서울에 돌아오는데, 무방비로 느끼는 에어컨 바람이 정말이지 잔인할 지경이었다. 정말 나는 이런 애매한 계절이 싫다. 한여름에는 에어컨이 있어도 나도 더우니 괜찮고, 한겨울에는 사람들도 추우니 난방을 틀어준다. 여름의 끝엔 나는 충분히 시원한데 사람들이 자꾸 에어컨을 틀고, 가을이 한창일 10월 즈음에는 나는 이미 추운데 사람들은 아직 난방을 틀 때가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가장 창의적이고, 열정적이고, 기운 넘칠 수 있는 시간대가 여름 밤이다. 아쉽지만 이제 오늘을 마지막으로 여름 밤을 보내주어야겠다. 내년 생일 무렵이 되면 또 여름이 오는 소리에 내 안의 여름 사랑 에너지가 팔딱거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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