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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02. 2023

[별글] 143_ Ditto

  뉴진스의 Ditto는 정말 이상한 노래다. 나는 보통 좋아하거나 음악적으로 빠져느는 노래에 과몰입을 하는데 Ditto는 딱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는 아니다. 쓸쓸하고 어딘지 모르게 비어 있고, 그에 비해 템포는 살짝 급하기까지 느껴진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나는 상상에 상상을 덧붙여 기꺼이 가사의 화자가 말하는 세계에 동참한다. Ditto는 다르다. 나는 딱히 과몰입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듣다 보면 내 정신머리의 멱살을 붙잡고 고등학교 시절로 데려간다.


  그건 아마 잃을 건 없어서 겁도 없이 사랑에 빠지지만(I got nothing to lose) 낭비할 시간도 없음(I got no time to lose)을 드러내는 가사 때문이다. 가진 게 시간 뿐인 고등학생의 사랑은 어쩌면 내어줄 것도 시간뿐이기에 어느 면에서 고달프다. 그런데 이 사랑, 쌍방이 아니다. 내 길었던 하루에 '난' 보고 싶지만 나는 그저 너무 먼 아침을 기다리며 상대방의 마음이 같기를(say it ditto 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Ditto의 화자는 어느 정도 일방적으로 상대를 향해 있으며 더 간절한 마음이다. 


  또 뜬금없이 이 노래가 나를 끌고 가는 곳은 2021년이다. 직장에 치여, 나름대로 몰래 수능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던 나날에 어떤 아이돌 그룹에 빠졌었다. 그때 나에게는 유난히 길었던 하루도 있었고 그런 날이면 내 아이돌이 라이브 방송을 켜주기를 기대했다. 어떨 때는 내 마음을 읽고 화답하는 것처럼 짠 하고 나타난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야속하게도 메시지 하나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갈 때도 있었다. Ditto의 감성만큼 쓸쓸하진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자마자 두 시기가 조합되면서, 내가 만약 학창시절에 아이돌 그룹에 빠졌더라면 이렇게나 쓸쓸하고 붕 떠있는(stay in the middle) 기분이었겠구나 싶다. 


  그래서 이 곡이 반가웠다. 있지도 않은 추억을 소환해준 노래랄까. 역시 추억을 조작하는 노래는 명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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