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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12. 2023

[별글] 151_ 동남아 여행

  생애 첫 여행지는 괌이었다. 그리고 그때 괌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난 어른이 되고 괌에 여러 번 더 가겠노라고, 신혼여행도 괌으로 갈 거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동남아 여행에 시큰둥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누가 공짜로 보내준다고 하면 마다하지는 않겠으나 내 돈을 들여서 가라고 하면 좀 망설여진다. 그래도 해외여행 치고는 동남아라는 지역이 비용적으로 만만한 데다가 관광지를 놓치지 않겠다고 초조해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동남아 여행은 지금까지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시큰둥해진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내가 물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물에 들어가는 건 굉장히 망설이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어릴 때도 딱히 바다에 들어가거나 수영하는 걸 좋아하진 않았다. 다만 물고기를 과하게 좋아했는데 괌에서의 스노클링은 그런 나에게 환상 그 이상이었다. 애써 찾지 않아도 눈앞에서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왔다갔다하는데, 심지어 식빵을 쥐고 흔들면 온갖 생물체가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때는 이종 공감 능력이 높았던 건지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보거나 그들에게 가까이 가는 일을 그렇게나 사랑했다. 그때도 물에 들어가는 건 싫었지만 알록달록한 바다 속 세상을 보기 위해서 개인적 불호를 극복하고 물에 들어갔던 것이다. 지금도 사실 그래서 바다 안을 볼 수 있는 호텔이라거나 잠수함 같은 데에는 로망이 남아 있다. 어쨌든 내 마음 속의 수중 생물 시대도 끝났고, 나 자신이 수중 생물을 자처할 만큼 물에 들어가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동남아 여행에서 바다를 빼면 절반은 손해보고 시작하는 기분이다. 물론 풍경이야 즐기겠지만 수영과 구경은 차원이 다르다. 아, 그리고 물에 들어가는 활동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날씨 운에 과하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럽다. 


  다른 하나는 더 멀리 가는 해외여행지에 너무 많이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나는 괌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움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다. 낯선 언어가 들리고 낯선 풍경이 들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팔지 않는 온갖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서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그 모든 과정이 좋았다. 그보다 미국은 더 낯설고 중동은 더더 낯설고 유럽은 더더더 낯설었다. 이렇게 경험치가 쌓이며 나는 더더더더 낯선 남미나 아프리카에 가기를 꿈꾸게 되었지, 동남아 여행은 어쩐지 시시하다고 생각하게 된 측면도 있다. 왠지 동남아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내 세계가 확장되어서, 필리핀이나 태국에 가자고 하는 말에 가슴이 별로 설레지 않는다. 


  그래도 오히려 그 시시함과 만만함 덕분에,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내 힘으로 가는 해외여행지는 동남아 여행이었다. 지역 이름이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마닐라에, 과외로 모은 돈을 털어서 가서 망고도 실컷 먹고 맥주도 실컷 마시고 왔다. 어른이 되어 여행을 다니면 술을 마실 수 있구나 하는 경이로움(?)을 동남아에서 배웠고, 엄마아빠 없이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첫 실험이 되기도 했다. 동남아의 음식은 동남아를 닮아 달고 짰다. 왜인지 튀긴 게와 새우가 생각나는 여행지다. 손이 쉽게 가지만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미 가본 여행지는 말고, 새로운 곳은 생각날 때 한 번쯤 더 가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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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괌은 동남아가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오세아니아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동남아 여행 하면 나에게는 괌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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