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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10. 2023

[별글] 150_ 나라에서 주는 용돈

그런데 이제 나라를 살리기 위한.

  예전에 성인이 갓 되었던 꼬꼬마 시절에, 동아리의 언니가 '기본소득 세미나'에 날 데려간 적이 있다. 그 언니가 그런 세미나에 아무 새내기나 엮어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나름대로 내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방향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언니 앞에서 아마 잘난 척을 다소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운동권에 소속되어 행동하는 언니가 멋있고 친해지고 싶어서, 나도 그런 쪽에 관심이 있다고 과장했던 듯도 싶다. 아무튼 언니가 데려간 세미나에서는 꽤나 본격적으로 정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본소득에 대해 각을 잡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는 좀 부담스럽기도 했고 내가 딱히 정치권을 노리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 모임에 오래 나가지는 않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았다. 


학생, 고마워요. 그런데 서른살이 넘어도 받아야 되겠어요.


  그리고 2023년, 이제 기본소득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는 웬만한 사람들이 한 번씩 들어본 말이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 비스무레한 것을 다들 한 번씩 경험해보기도 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용돈이 지급되었고, 나는 그 사건이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미루던 병원에 가고 새로 러닝화를 샀다. 당장 없다고 죽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하지 않으면 건강에 해가 되는 소비였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돈만 있었어서 병원에 가는 일도, 새 러닝화도 사치였으나 나라에서 주는 '용돈'으로 안심하고 소비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새로 안경을 맞추거나 못 먹던 소고기를 먹거나 그랬던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 없다고 죽지는 않지만'의 소비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재난지원금이 목숨을 살리기라도 했냐며 코웃음쳤지만, 목숨만 부지할 수 있는 정도의 삶은 또 얼마나 가혹한가.


  사실 나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최저 생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생활을 꿈꾸는 차원에서만 기본소득을 생각해 왔다. 그런데 작년에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기본소득이 오히려 자본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수단이 된다는 논지의 강의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글이 너무 길어지겠지만 짧게 이야기하면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어느 정도의 대중소득이 필수적인데, 기계화와 자동화의 시대에 대중소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결국 소비할 사람이 없어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Long story short, 우리는 용돈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그 이유를 존엄성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며,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 얘기를 구구절절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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