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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09. 2023

[별글] 149_ 인류애가 차오를 때

  흉흉한 소식이 들리고 그에 대한 생각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또다른 흉흉한 소식이 덮치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분명 인류애가 차오르는 순간은 있다. 인류애가 차오르는 속도보다 박살나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문제라면 문제지만, 의식적으로 사랑을 목격한 순간을 반추하면서 현실을 견디고 있다. 


  인류애가 차오른다고 가장 직관적으로 느끼는 순간은, 도와줄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제삼자를 도와주는 광경을 볼 때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는 그야말로 술에 떡이 되어 잠들어 있는 여성분이 있었다. 그 분은 무려 자리를 세 개나 차지하고 앉아있었는데, 왼쪽으로는 고개가 기울어 자리를 침범하고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핸드백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 방향을 의식하면서도 일부러 고개를 돌리거나 옆자리에 굳이 앉으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아주머니가 과감히 그 왼쪽으로 가서 앉으시더니 어깨를 내어주시는 것이다. 여성분이 잠깐 정신이 든 사이에는 걱정이 되어 그런다며 가방을 꼭 안고 있으라고 흘러내린 가방을 다시 올려주기까지 하셨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고, 다른 쪽에도 빈자리가 남아있었는데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게 챙겨주시는 모습이 엄청 감동적이었다. 


  두 번째로는 다수의 사람이 긍정적인 감정으로 하나될 때가 있다. 영화 <엘리멘탈>에서 가장 감동받은 장면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갈리겠지만 나에게는 무조건 러츠 응원 장면이었다. 개인적인 일로 일시적 슬럼프가 찾아와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러츠에게 웨이드의 주도로 "We love you Lutz!"라고 응원을 외쳐주며 다같이 파도를 만드는 장면은 나를 눈물 흘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지고 있는데도 그 순간 그들은 완전히 긍정 에너지로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인간들이 좋은 방향으로 하나가 되는 건 물론 행복하지만 딱히 감동적이지는 않다. 콘서트장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다같이 방방 뛴다고 인류애가 차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가장 아플 때나 슬플 때조차도 우리는 하나가 될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집회에서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마음이 울렁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진심은 착실히 가서 닿는다는 생각이 들 때 인류애가 차오른다. 친하거나, 원래 진심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전하는 진심에서는 인류애가 차오른다기보다는 그냥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차오른다. 그렇지만 친하지 않거나, 내가 지금 이 말을 하는 게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는, 성공적인 경우 인류애가 벅차게 느껴진다. 주로 멀리 있는 사람에게 연대나 위로를 보낼 때 이런 감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글은 그런 연대의 마음으로 착실한 진심을 보냈다가 이젠 애정을 주고받는 사람을 수신자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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