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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08. 2023

[별글] 148_ 약자들의 연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있고 약 50일 정도가 흐른 이번 주는 49재였던 월요일을 시작으로,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추모 주간 행사가 있었다. 오늘은 마지막 행사인 서이초 행진이 있었다. 부끄럽지만 프로 시위러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에 비해 이번 일에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공식적인 집회나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오늘이 처음이었다. 물론 일정이 없는데 일부러 참가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일정을 비우거나 바꿀 만킁의 열의는 보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여러 변명 같은 이유가 따라온다. 우선은 방학 내내 해외에 있었어서 그런지 아직 현실감이 덜 느껴지고 마음이 방금 얻어맞은 듯 얼얼하기 때문이다. 얼빠진 상태에서 조금은 벗어나야 행동할 수 있는데 적어도 이 일에 한해서는 좀 멍한 상태였다. 또 아직 교사가 아니라서 약간은 머쓱한 부분도 있다. 물론 예비 교사도 예비 당사자라고 할 수 있고 동기 친구들도 이번 일로 적잖은 상처도 충격도 받았으나, 너희가 왜 나서느냐고 물으면 다소 할 말이 없다. 어쩌면 언제라도 교직에서 발을 뺄 준비가 되어있어서 일부러 거리를 둔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마음에 차곡차곡 부채감을 쌓으면서도 선뜻 나서거나 이 일에 대해 함부로 발언하지 못했다. 


  마지막 행진까지도 함께하지 못하면 정말이지 죄책감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동아리 연습에 늦는다고 말해두고 학우들과 모였다. 구호를 외치는 일도, 손피켓을 흔드는 일도 나에게는 너무 익숙하고 아마 함께하는 친구들에게는 낯선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서이초는 정말 너무나도 가까웠다. 동기가 앞구르기 한 번 하면 갈 수 있는 거리였네, 하고 씁쓸하게 농담을 던졌다. 예비 교사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배우고 있는 근거리에서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가슴이 새삼 서늘했다. 


  교사들은 지금껏 왜 참았을까? 오늘 사회학 교수님은, 각각의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서로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교사 개인은 그저 자기 교실 안에서 고통받으면서, 자기가 아이들을 잘 통제하지 못해서 힘든 것이라고 혼자만의 문제로 취급하며 자책하게 되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교사 집단이 상당히 '교사는 좋은 직업이다'라는 세뇌를 당해왔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방학도 있고 연금도 나오는 그런 직업 주제에 어딜 감히 약자를 자처하나 하는 마음이 나에게만 있는 불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사 집단보다 취약한 집단이 존재한다 해도, 교사들이 처한 특수한 취약성을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니다. 속이 곪아 가면서도 자기주장도 못할 만큼, 이 사람들은 말을 안 들어본 경험이 없다.


  그 짧은 행진에, 안 그래도 줄도 잘 맞추고 있는데 끊임없이 중간중간 네 줄로 나란히 줄을 맞추는 학우들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트럭 위에 올라가서 자유발언을 하면서도 호전적인 낌새라고는 전혀 없는 나의 동료 예비교사들이 제발 무사하면 좋겠다. 경제적 지위이고 뭐고 자연사할 수 없는 위기에 자꾸 놓인다면 이게 약자성이지 무어가 약자성인가 싶었다. 지나다니는 시민들은 우리를 보고 손도 흔들어주시고 큰 소리로 응원하는 분들도 계셨다. 사실 지금까지 집회에 다니면서 이렇게 제삼자에게 응원받은 경험은 처음이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마 말 잘 듣고 큰 얌전한 애들이 무사히 교사가 되어 자연사하기를 바라는 건 당사자나 예비 당사자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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