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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Jan 31. 2024

[별글] 215_ 동네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가장 좁은 단면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실험하려고 지은 같은 동네다.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 보면 좁은 방에서 주인공이 통화하는 소리로 옆집에서 항의가 들어오는, 그런 집들이 즐비하다. 혼자 살면 몰라도 짝꿍이랑 둘이 사는데 대화가 옆집에 공유될 정도면 너무 곤란했다. 원래는 독서실로 쓰다가 벽을 임시로 만들어서 혼자 사는 방으로 쪼갠 형태의 집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집을 구할 내내 벽을 두드려보고 다녔다. 겨우겨우 같은 집을 찾았지만 앞집과 아주 가까이 마주보고 있다. 앞집 사람과 동시에 문을 열면 코가 서로 부딪칠 정도의 거리. 골목 골목마다 그런 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사람을 위한 넓은 길은 없다. 넓은 길은 모두 차를 위한 것이다. 우리 동네의 지도는 바둑판처럼 생겼는데 네모 칸은 모두 고시원과 원룸과 학원이고 좁은 길은 사람과 오토바이(우리 동네가 한국에서 배달을 가장 많이 하는 동네라고 한다)나누어 쓴다. 집을 나서자마자 있는 대형 학원에서는 시간마다 수험생들이 내려와 담배를 피운다. 담배 연기에 숨을 참지 않고 집을 나서지 않는 날이 없다. 


  그래서 본가의 동네길을 내내 그리워하며 지냈다. 우리 본가는 대형 아파트인데 지금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이 보면 혀를 찰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지어졌다. 사는 사람들의 소득은 높은데 지하주차장이 없어서 주차 대수가 세대 당 0.5대 정도라서 주차난이 처절할 정도이다. 저층 아파트가 많은 편이라 본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조차 없다. 얼마 전 집을 알아보러 다니다 본가 동네를 부동산 버전 지도로 봤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아파트가 너무 듬성듬성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 비효율을 나도 모르게 익숙해하고,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거대한 보행자용 길에는 인구 밀도도 낮고, 강아지와 산책 나온 견주들이나 축구공을 들고 나온 초등학생 등, 여유를 한모금 머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늘 만날 수 있다. 길에 인구 밀도가 낮아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도 지하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밝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기분 좋게 지나칠 수 있다. 


  봄에는 또 벚나무가 어찌나 많은지 한강 명소가 부럽지 않다. 몇 번 유명하다는 벚꽃길을 방문해 보았지만 만족도가 본가 동네길 산책만 못했다. 일단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꽃잎만 흩날리고 그 사이를 걷는 내가 있다.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는 과외를 하러 갈 때만 본가 동네를 지나게 되었는데, 봄이나 가을에는 그 동네를 향할 때 기분이 유난히 맑아진다. 


  올 봄, 몇 년 간 그리워하던 본가 동네에 돌아가게 되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살던 동네의 옆 동네이기는 하지만 산책하려고 집을 나서면 거대한 본가의 동네길을 만날 수 있는 집이다. 오토바이와 서로 지나가겠다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담배 연기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어서 벌써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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