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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Jan 24. 2024

[별글] 213_ 장바구니템

  무언가를 대용량으로 사서 쟁였을 때는 다 떨어지는 시점에 괜히 놀란다. 예를 들면 한 판을 통째로 산 달걀을 그새 누가 다 먹었지. 백 장이나 있었던 슬라이스 치즈가 어디로 사라졌지, 이런 놀라움이다. 대부분의 장보기를 쿠팡에서 하면 이럴 때 좋다. 내가 그 물건을 언제 샀었는지 검색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치즈는 작년 7월에, 달걀은 올해의 첫 장보기에 샀다. 달걀이야 계란찜 한번 하려면 대여섯 개는 우습게 쓰니까 그러려니 해도, 이런 식으로 가늠해 보면 내가 정말 치즈를 왕창 먹어치우는 사람이구나 싶다.


  사고 나면 빨리 소진해야 해서 대용량으로 사진 못해도 빠른 속도로 먹는 음식들이 있다. 새송이 버섯이나 두부, 국거리용 돼지고기, 닭다리살 순살은 별 이유 없어도 뭐라도 해먹겠지 싶어서 자꾸만 장바구니에 담게 되는 항목이다. 그러다 보니 물가에도 빠삭하면서도 민감해진다. 350g짜리 닭다리살 정육은 2021년 초에 5600원이더니 어느새 7천원이 넘었다. 아무리 비싸도 화를 내면서라도 사게 되는, 이런 걸 비탄력적 재화라고 부른다지. 


  장바구니의 구성은 내가 바쁠수록 단순해지고 한가할수록 변칙이 생긴다. 2020년 상반기의 나는 자취를 시작했는데 정규직이 아니었다. 그말인즉슨, 식재료를 알아보고 요리를 만드는 데 들일 수 있는 시간이 무한정 많았다는 뜻이다. 그맘때의 나는 제철음식에 꽂혀 있었다. 손질이 필요한 재료라도 거침없이 구매했고,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도 겁없이 도전했다. 학업과 생계와 살림이라는 삼중 직책을 병행하면서는 점점 간단한 재료를 선호하게 되었다. 뭐든지 순살로, 야채도 버릴 부분이 없으면 가장 좋다. 꽁무니만 뜯어서 버리는 상추나 껍질만 벗겨내면 되는 양파 정도는 괜찮지만 채를 썰어야 하는 당근, 벗기고 썰고 볶기까지 해야 하는 연근 등은 점점 피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특히 달걀과 치즈(내가 지나치게 소비한다고 의식하고 있는 두 항목)는 인덕션도 아닌, 전자레인지로도 조리가 가능한 식재료이다. 안주가 부족하거나 반찬이 없을 때면 나는 밥을 그릇에 눌러담고 달걀을 뭉개고, 치즈를 올려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다. 결국 장바구니와 식탁은 내가 여유가 있을수록 복잡해진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올해는 나는 더 복잡한 장바구니를, 그만큼 더 단순해진 삶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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