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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Feb 15. 2024

[별글] 221_ 초콜릿

  재수학원에선 친구를 사귀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지만(실화다) 나는 열아홉이었다. 누구와도 떠들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나이에 우리는 급식실로 향하는 계단에서 번호를 주고받거나,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몰래 접선하며 우정을 착착 쌓아갔다. 재수학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는 초콜릿 마니아였다. 나 역시 그랬는데 우리의 초콜릿 사랑은 결이 좀 달랐다. 우리는 이 주제를 가지고 늘상 싸웠다. 교실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교무실에서 CCTV로 지켜보던 담임 선생님이 스피커로 대화 금지라고 착석하라고 방송을 내보냈는데(빅 브라더 같지만 이것도 실화다) 어떻게 싸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걔는 모든 초콜릿을 좋아했고 나는 아무 것도 첨가되지 않은 초콜릿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땅콩이 들어간 엠앤엠이라거나 바삭바삭한 과자가 들어간 크런키라거나, 그런 초콜릿에서 토핑은 나에게 초콜릿의 맛을 방해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U는 그런 나를 질타했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건 사랑해야 진정한 초콜릿 마니아라고 했다. 나는 초콜릿에 장애물이 끼면 더이상 초콜릿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그 친구는 나에게 순수한 초콜릿만을 좋아하는 순혈주의자라고 했다(이미 내용에서 알겠지만 우리가 딱히 서로를 진심으로 미워해서 싸우는 건 아니었다. 우리의 티격태격거림은 강아지들이 서로를 다치게 할 생각 없이 서로 앙앙 물어대며 다투는 종류의 것이었다. 왜 하필 초콜릿으로 저렇게 진지한 말다툼을 벌였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재수학원에서 심심하다고 답하겠다). 


  어느날 U가 나에게 무언가를 자신 있게 내놓았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나의 표정을 보고도 U는 의기양양했다. 

  "먹어 보고 말해."

  "싫어!"

  "이걸 먹고도 싫다고 하면 다시는, 뭔가 들어간 초콜릿이 우월하다고 시비 안 걸게."

그애가 내민 건 헤이즐넛이 들어간 도브 초콜릿이었다. 나중에 먹겠다고 초콜릿을 가방에 넣는데도 그애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하루종일 그 초콜릿이 신경 쓰였다. 재수학원이 끝난 열 시, 집에 가는 길에 참지 못하고 포장을 뜯어 한 입을 베어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애한테 바로 문자를 보냈다. 

  - 내가 미안. 

  - ㅋㅋㅋ.

그것 보라거나 너도 이건 맛있지, 라거나. 그런 부연도 없이 웃기만 하는 답장이었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분했지만 집에 가는 길에 초콜릿 바 하나를 전부 먹어치웠다. 


  초콜릿 옆에 있는 어떤 토핑이건 장애물이 되는 게 아니었다. 종류가 문제였다. 나는 땅콩도 뻥튀기도 싫어하니까 크런키도 땅콩 엠앤엠도 마음에 들 리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비스킷과 초콜릿이 손을 잡은 빈츠도, 아이스크림이 초콜릿을 안고 있는 옥동자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마카다미아 초콜릿은 신세계였고 밀리노 쿠키는 눈물날 정도로 좋았다. 그 이후로 나는 초콜릿이 섞인 어떤 음식도 섣불리 싫어한다고 말하기가 머뭇거려진다. 민트 초콜릿에 대한 사랑도 초코 술 '머드셰이크'도 알게 된 지 오래니까. 


  한때는 다크초콜릿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짱은 카카오 함유량이 70퍼센트가 넘어가지 않으면 초콜릿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말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한다는 소위 준초콜릿이 초콜릿 향 우유 딱딱간식에 가깝다고. 드림카카오 72, 84를 행복하게 비워내는 미짱을 보면서도 나는 56이 최대였다. 그 이상을 먹으면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최근엔 다크초콜릿에도 마음을 열었다. 커피의 향을 다양하게 느끼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떤 원두에서는 초콜릿 향이 난다. 거꾸로 다크초콜릿을 먹으면 내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를 고체로 만들어서 먹는 기분이 든다. 이래서 어떤 초콜릿은 싫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여전히 맨 처음에 좋아하던 가나초콜릿 빨간색을 가장 좋아한다. 일반적인 가나초콜릿과는 달리, 빨간색에는 탈지분유가 많이 들어가서 부드럽고 포근한 맛이 난다. 그런 맛이 나는 가나초콜릿을 냉장고에 보관해서 딱딱하게 만들었다가 어금니로 따각 하고 씹어서 먹는 느낌을 즐긴다. 그리고 여전히, 아마 건포도가 들어간 초콜릿은 싫어서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취향의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도, 뭔가 초콜릿이라는 세계에 아직 내 취향이 넓어질 여지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 근데 슬프게도 도브 헤이즐넛은 현재 한국 기준 단종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건 전부 단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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