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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Feb 15. 2024

[별글] 222_ 좋아하는 요일

  월요일엔 좋은 일이 안 일어나니까 운동이나 하라는 조언을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월요일은 지겹다는 느낌이 있다. 아무리 역동적으로 살아도 월요일엔 왠지 축축 처지고 유독 피곤하다. 어쩌면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루틴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월요일은 시무룩한 얼굴로 하루를 보낸다. 나머지 요일을 위해 견딘다는 느낌이다. 직장에 다닐 때만큼 월요일이 싫어서 기절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요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월요일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자신은 없다. 


  화요일은 중립적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평하게 일어나는 느낌이다. 솔직히 화요일을 훨씬 좋아할 수도 있었는데 보통이라고 느끼게 된 건, 화요일에 약속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월요일의 긴장은 화요일쯤이면 풀리지만, 친구들(특히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날짜가 화요일로 정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즘의 화요일에는 학원 강의를 맡고 있어서 어차피 일정을 잡을 수도 없기는 하다. 강의가 끝나고 나면 늘 텐션이 급속도로 오른다. 그래서 요즘 들어 화요일의 밤은 한없이 길어진다. 두 시까지, 어떨 때는 세 시까지.


  수요일은 기분이 좋은데 이건 순전히 요즘 빠진 LoL 리그 때문이다. LCK라고도 부르는 롤의 한국 리그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경기가 없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경기가 있다. 지금은 스프링 시즌인데, 4월 중순쯤 끝나는 이 시즌이 끝날 무렵까지는 아마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경기를 곁눈질로는 보면서 지낼 것 같다. 우리 팀 경기는 곁눈질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을 만큼 열심히 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어제도 설 연휴 일주일을 쉬고 간만에 경기가 있었던 덕에 알찬 저녁을 보냈다. 


  사실 좋아하는 요일을 딱 하나만 꼽아 보라면 목요일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우선 학기 중에는 합창단 연습이 있어서 노래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산점이 왕창 있다. 목요일은 여러 모로 만만한 요일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싶은데 금요일이나 토요일을 내어달라고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때, 왠지 목요일 저녁 정도는 만나달라고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인턴을 하던 시절에 회식도 목요일에 잡히곤 했다. 금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지만 회식 다음 날은 왠지 헤롱헤롱거리며 일해도 모두가 용인해주었다. 홍대입구역에 꼭 나가야 한다면 목요일에 나갈래 금요일에 나갈래, 해도 당연히 목요일이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사람이 많은 걸 견딜 수 없어서 그렇다. 목요일엔 즐거운 일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싶고, 그 결과값도 생각 이상으로 좋다. 목요일에 체력을 써서 그 여파로 금요일에 힘들어진다 해도 토요일의 늦잠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목요일을 좋아하게 되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금요일은 모두가 좋아하는 요일이지만 나에게 호불호를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당연히 좋냐 싫냐로 물으면 좋다 쪽에 가깝지만,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물음표가 여러 개 찍힌다. 직장인 친구들은 당연히 금요일에 만나는 걸 선호하지만 난 금요일에 좀처럼 번화가에 나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피곤한 직장인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일 수도 없어서 상당히 애매하다. 번화가에 나가면 내가 공황의 위험에 처하고 우리 집에 부르면 직장인 친구가 술자리를 시작하고 10분 만에 졸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래서 금요일은 의외로 짝꿍이랑 둘이 집에서 얌전하게 보낼 때가 많다. 나에게 있어 신나는 날이라고 규정하기는 좀 어렵다. 


  누군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진득하게 놀 일이 있다면 그게 토요일이었으면 한다. 금요일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토요일에 밖에 나가기는 쉽지 않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고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려면 거의 고함을 질러야 한다. 그치만 토요일엔 보통 퇴근 시간이랄 게 없으니까 누군가 우리 집에 온다고 해도 꼭 일곱시, 여덟시 무렵이 아닌 늦은 오후일 수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막차를 덜 걱정해도 여유롭게 놀 수 있다. 여전히 일요일이 든든히 존재하기에 피곤할 걱정은 안 하고 놀 수 있다. 


  어릴 땐 여느 사람과 비슷하게 일요일이 불안했다.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한다는 압박, 그럴 리 없는데도 무언가 숙제를 빠뜨렸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지금은 일요일 저녁도 의연하게 맞이하게 되었는데, 성숙해져서라기보다는 월요일이 그닥 불안하지 않아져서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철저히 준비된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뭔가를 빠뜨려도 어떻게든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 쪽에 가깝다. 내가 뭔가를 잊어도 큰일이 난 적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런 걸 또 까먹었다니 하며 어떻게든 수습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 경험이 많다. 스스로를 일부러 곤경에 빠뜨리겠다는 건 아니고, 이런 '어쩌라고' 정신을 갖지 않으면 일요일 저녁을 초연하게 맞이할 수 없음을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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