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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Feb 18. 2024

[별글] 224_ 비행기

  나는 공식적으로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를 갈망한다. 세상에는 연락이 늘 잘 닿는 사람들도 있고, 한 번 연락하면 몇 시간이고 답장이 안 오는 상태가 일상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나는 전자다. 언제나 연락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지금 제대로 답장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Zoom으로 수업을 하던 중 전화가 왔을 때도, 당연히 받지는 못했지만 끊은 채로 두지 않고 문자로 지금은 통화가 어렵다고라도 보내 두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과 멀어져 있으면 불안하다. 새로운 소식을 못 접할까봐가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연락을 놓칠까봐 그렇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는 늘 피로하고, 강제로 연락을 못 받을 상황을 늘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을 좋아한다. 비행기의 운항에 방해가 될 까봐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야만 하는 낭만적인 교통수단이라니. 버스나 지하철, 기차를 탈 때는 'ㅇㅇ 타느라 연락이 안 됐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행기 때문에 연락을 놓치면, 특히 대부분의 경우 나는 공항에서 찍은 인증샷을 SNS에 업로드하고 출발하는 편이기 때문에 모두가 연락을 못 받아도 납득한다. 연락을 했다가도 '아 맞다, 별이는 지금 비행기 타고 있지.'라고 생각해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비행기를 타고 있는 동안을 n시간의 명상 코스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치 여행 일정을 뺏긴다며 싫어하는 낮 비행기도 별로 싫지 않다. 비행기에서 할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어째 손이 가지 않는 네모네모 로직 퍼즐북도 챙기고, 한국 책보다 훨씬 가벼운 페이퍼백 미국 소설도 챙기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마구 구상하려고 빈 노트와 샤프도 챙긴다. 이것저것 하다가 이제 몸이 찌뿌둥해서 좀 움직이고 싶어질 때쯤 도착한다. 오히려 밤 비행기(또는 도착할 때 아침이 되는 비행 일정)는 비행기에서 자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그런데 자기에는 영 불편한 좌석 때문에 괴롭게만 느껴진다. 


  그럴 거면 그냥 휴대폰을 하루 꺼두고, 또는 다른 곳에 두고 책상에 열 시간 정도 강제로 앉아서 하루를 보내면 되지 않냐 하겠지만 그건 아예 다른 일이다. 우선 난 별 핑계 없이 연락을 무시하는 일이 무섭고, 몸이 자유로우면 자꾸 할일이 머리에 떠오르고 엉덩이가 들썩인다. 다음 끼니 반찬도 만들어야 하고 과외 준비도 해야 한다. 비행기에 타고 있으면 별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도록 행동이 제한되어 있어서 역으로 자유가 생기는 것이다. 


  조만간 비행기를 탈 일이 생기면 좋겠다. 가능하면 다섯 시간 이상의 비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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