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29_ 못난 감정을 직면할 때

by 벼르

2021년 말 이후 아직 얼음 상태에서 땡 되지 않은 마음이 덜 녹아서, 나도 낯선 나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꼭 내가 싫어하는, 건조하고 퍼석한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럴 땐 내가 아직 어떤 의미에선 얼어 있는 상태라고 잘 설명해야 한다. 이해해주는 사람과는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거고,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람과는 아쉽지만 이별이다.


슬프거나, 힘든 일에 공감하기 어렵다. 친구가 떠난 직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앉아있어야 하나, 얼이 빠진 채로 조교실에 겨우 앉아만 있던 때였다. 같이 일하던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와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출근을 못 했다며 지금 장례식장이라고 힘겹게 말씀하셨다. 위로를 바라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음...네. 그렇군요." 어색한 침묵 뒤에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는 나에게 충격을 받았다. '그렇군요'라니. 무슨 사이코패스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때 솔직히 내 머릿속에 드는 감정은 '어쩌라고'였고 나는 최대한 순화해서 말했던 거였다. 선생님은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으신데,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판에, 지금 내 친구는 서른도 되어보지 못하고, 그런 생각이 머리에 꽉 차버렸다. 원래 나는 과할 정도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편이었고 그렇게 무덤덤한 나를 견디기 어려웠다.


적어도 비슷한 일이 있는 사람에겐 더 나은 위로를 건넬 줄 알았다. 오늘 친구에게 재작년의 나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재작년의 난 숱하게 상처 되는 말을 들으면서, 주변에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위로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친구에게 그런 일이 있다고 들으니, 다시 재작년으로 돌아간 듯 굳어버렸다. 너무 미안했다.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 덜 추스러졌다고, 이렇게까지 아직 얼어있을 줄은, 나도 오늘 알아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저 너를 잘 돌보라고 그렇게만 전했다.


이 글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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