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고 100일째 되는 날이다

11월 7일, 그날의 아침 공기를 기억해.

by 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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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관련된 날엔 어김없이 하늘이 운다는 소식이 있다. 너를 보내주러 가던 길 내내 회색 하늘에서 비가 내리더니, 너를 보내주고 돌아오던 길에는 하늘이 너를 닮은 분홍빛 엷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너와 관련된 날 내리는 비는 너를 닮았다. 꼭 너처럼, 와르르 쏟아지지도 않고 차분히 조용히 비가 내린다. 꼭 네가 빗방울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끄러운 천둥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내린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나는 네가 한 번이라도 주먹을 꼭 쥐고 목에 핏대가 서도록 소리쳐 봤으면 했다. 그만큼 네가 화났으면 했던 게 아니라, 너는 이미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목에 핏대를 세우는 대신 마음에 핏대를 세웠을 까. 밖으로 꺼내지 못한 소리는 네 안에서 맴돌며 울렸을까.


네가 가고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바람의 연장선도 있고, 엉뚱하게 처음으로 떠올린 소망도 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너를 떠올리며 바라는 몇 가지를 정리해보려 한다.


100일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너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너는 여전히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이며, 내 마음 속엔 여전히 쨍할만큼 빛나며 살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너를 마음껏 자랑하지 못하는 게 가장 속상하다. 너는 아직도 내 자부심인데, 사람들은 네 이야기를 하면 이제 내 눈치를 본다. 내가 너를 빨리 잊기를 바라는 걸까 싶어 괜시리 그들이 미워진다. 그저 나는 이전과 그대로 너 때문에 행복하고 너를 생각하며 때로 눈물짓고 싶을 뿐인데 쉽지 않다. 아직 세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건데 벌써부터 내 입을 막으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혼자 있을 때에만 울기로 했다.


나는 너를 느리게 보내고 싶다. 너는 급히 마무리하고 떠났지만 나만큼은 오래도록 정리하고 기억하고 예뻐해주고 나서, 그러고 나서도 내 옆에 한참 너를 두고 싶다. 너는 언제까지나 내 마음을 지키는 수호천사일 것이며, 누군가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면 너의 이름을 가장 먼저 말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너를 빨리 정리하고 보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서운하지만 마냥 그 사람들 탓을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어떤 친구였는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구나, 짐작할 따름이다.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을 이해시키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입을 다물기로 했다. 우리는 쌍둥이 별이었다. 한 쪽의 물리적인 존재가 더이상 없다고 해서 관계가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 왜 모를까. 언젠가는 알게 될까. 그들이 모른다 해도 상관없다. 너와의 관계는 내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또 너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땐 도움이 되고 싶다. 여기까지 마음이 도달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어떨 때는 그냥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공명하던 네가 없는데 누구를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생각했다. 한껏 삐딱해진 나는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형태로 악해졌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사랑을 잃고 똑같이 아파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그런데 나는 역시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더라. 얼마 전 뒤의 일정을 다 취소하고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달려가며 느꼈다. 네가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누구를 돕거나 사랑하더라도 마음의 중심에 항상 네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너도 나에게 무너지듯 기댈 줄 알았으면 좋았을 걸 싶긴 하다.


너와 내가,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일들로 삶을 꽉 채우련다. 너와의 약속을 전부 지키고 가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한 생각이다. 나와의 마지막 식사 시간에 너는, 내후년에 남미 여행을 가자는 말에 너무 좋다고 대답했었다. 네가 가기 2주 전에는 함께 겨울 내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정주행할 생각에 들떴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 정주행은 잠시 미뤄두었지만, 그리고 남미 여행도 조금은 미룰 수도 있지만 전부 할 거다. 그리고 너에게 어땠다고 꼭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너를 웃게 만들었던 것들을 계속하겠다. 너는 악을 쓰며 울지는 못하는 사람이었어도 큰 소리로 웃을 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그 웃음이 쌓여 너를 조금이나마 더 오래 머물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 조금은 다행이다. 너는 나의 블랙 코미디를 사랑했다.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아 너를 괴롭히는 세상을 신랄하게 비꼬면 너는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네가 없는 지금도, 내가 널 웃게 만들었던 사람이라는 걸 떠올리면 뿌듯함으로 마음이 울렁인다. 화날 일도, 지칠 일도 많은 세상이지만 네가 사랑하던 모습 그대로 세상을 몽땅 비웃으면서, 동시에 사랑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겠다.


다른 사람이 상처주는 말을 조금 덜 귀담아듣게 되었다. 이건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일이나 한 번도 실현하지 못했던 건데, 네가 가고 나서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이제 어떤 말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내가 이전보다 대단하게 단단해지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남이 한 말에 끙끙 앓으며 지내는 시간은 낭비 같다. 요즘은 모든 것이 찰나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다들 웃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찰나이니까 끝나도 상관없다는 게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에 매여 이리저리 방황할 틈이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너를 그냥 곁에 두고 살아가기로 했다. 한때는 애도라는 작업이 마치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언제쯤 이 슬픔과 그리움이 끝날까 날짜를 세어 보기도 했다. 말로 글로 책으로 애도를 배웠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제는 애도를 끝내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너는 여전히 나와 함께이고, 나는 길을 잃을 때마다 너를 떠올리며 너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나는 늘 너에게 가장 먼저 전했고, 너는 누구보다도 나를 응원해 주었다.


이상한 세상에서 더 이상하던 나에게 제일 멋있다고 박수쳐주던 너. 나는 아직도 네가 많이 그립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맛있는 걸 먹을 때면 너와 함께 먹고 싶고 예쁜 곳을 가도 너와 함께 가고 싶어. 아니, 사실 함께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내가 칭얼칭얼 하소연하면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같이 짜증을 내 주던 너. 나에게 1만큼 좋은 일이 생기면 100만큼 기뻐해주던 너. 충동적으로 이곳저곳 같이 가자고 끌고 다니는데도 싫다는 말 하나 없이 내가 하자는 건 다 좋다고 해주던 너. 너는 내 여행 메이트였고, 내 반짝임을 가장 잘 알아보아 주는 사람이었고, 네 덕에 덜 외로울 수 있었고, 네가 나오는 꿈은 항상 재미있었고, 너와 나눈 이야기는 항상 가슴에 가장 찬란한 빛으로 새겨졌어.


기억은 내가 할 테니 너는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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