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01_겨울방학

겨울잠을 자는 계절, 인간관계의 일시정지

by 벼르

설렐 때만 사랑이라면* 나는 3월에만 학교를 사랑했다. 3월의 개학은 9월의 개학과 차원이 다르다. 9월의 개학에는, 아직 끈적함이 묻어있는 날씨에 어울리게 귀찮음을 덕지덕지 얼굴에 붙이고 온 지겨운 얼굴의 애들이,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징징댄다. 3월에는 허세 가득한 노는 애들조차 굳은 얼굴로 주위를 살핀다. 제목을 겨울방학이라 붙여 두고 뜬금없이 3월 타령을 하는 이유는, 성인이 되기 전 나에게 겨울방학은 그저 3월의 설렘을 극대화하기 위해 견디는 기다림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겨울에 나의 인간관계는 일시정지되었다. 나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 치고도 휴대전화를 늦게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서야 사적인 연락망을 가질 수 있던 나는 방학 동안에는 그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알(문자나 전화를 쓸 수 있는 그 시절 핸드폰 요금제의 재화 같은 것)이 부족하다며 한탄했지만 난 아무것도 없었다. 즉 방학 때는 학교 친구들과는 강제로 단절되었고 특히 겨울방학이 끝나면 봄방학 이전의 잠깐 사이 빼고는 그 이전의 친구들과는 다시 만날 일도 없었다. 반이 갈라지면 웬만하면 우정도 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묘하다. 대부분 1년짜리 시한부 우정일 친구들과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부분의 대화를 한다는 게 말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특히 봄학기에는 매일이 달랐다. 치열하게 누군가를 배척하고 누군가는 끌어당기며 무리짓는 나날이 지겨우면서도 짜릿했다. 어쨌든 그전 해의 묵은 인간관계, 거기에 달린 찝찝함은 전부 자동으로 청산하고 새로운 무작위 친구들을 만나는 거니까.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들은 다음 학년은 더 힘들 거라며 방학 동안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겁을 주었지만 그런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뒷담이라거나, 내가 저지른 자잘한 실수에 따라오는 잔잔한 후속 결과가 통째로 잘려나간다는 후련함만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후련함은 3월까지 모든 걱정을 유예해도 된다는 게으름이 되어 나를 정지하게 했다.


겨울이 나에게 정지로 느껴진 건 인간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전반적으로 겨울보다 여름을 더 좋아하고, 겨울에 좋아하는 거라곤 크리스마스와 펑펑 오는 눈, 그 눈을 보면서 마시는 핫초코 정도이다. 핑계가 아니라 크리스마스가 2월쯤 있으면 나는 설레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겨울을 부지런히 보낼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겨울방학의 시작점에 지나 버려서 허무하게 이상한 일주일을 보내면 3월을 향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한평생 카톨릭 신자로 살아오면서, 부활절이 한 해의 시작점처럼, 성탄이 마지막 축제처럼 다가오는 것도 나의 이런 경향성을 만들었을 수 있겠다.


아무튼 그런 겨울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어째 겨울에는 그렇게 잘 챙기던 사람들도 잘 안 챙기게 된다. 생일이 겨울인 친구들은 좀 억울할 수도 있는데 나는 진짜로 3월부터 12월까지 친구들을 더 잘 챙긴다. 대신 가족이나 애인과 시간을 많이 보내며 3월까지 시작을 미루고 또 미룬다. 나의 에너지는 기온과 정비례한다며, 봄이 오면 뭐든 하겠다고 핑계를 대면서.


이번 겨울방학도 정말 알차게 게을렀다. 3월이 출발점인 건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친구들도 예습에 불성실하기를, 헛된 바람을 품던 학생 때처럼 난 여전히 느리게 올해를 출발한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개강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야 겨우내 못 챙긴 친구들이 마음에 걸린다. 내일은 공강시간에 밀린 연락을 해봐야겠다.


* 레드벨벳의 노래 '피카부'에 설렐 때만 사랑이라는 표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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