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70_ 답이 정해져 있더라도

by 벼르

투 머치 토커는 관계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의 투 머치 토커는 통상적인 뜻과는 같을 수도,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말이 많고,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말한다는 것까지도 같은데, 말의 목적이 조금 다르다. 관계에서의 투 머치 토커는 어색한 침묵을 못 견디는 사람이다. 침묵을 깰 수만 있다면 스스로를 우습게 만들 준비까지도 되어 있는 사람이다.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다정한 말을 건넬 에너지를 기꺼이 소모하는 사람이다. 관계에서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노력을 알아주고, 반응해주고, 대화에 참여하기도 하는 굿 리스너를 만난다면 큰 행운이다. 그런데 이런 특성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급격히 피곤해진다. 사람의 약점을 귀신같이 파악해 자신이 우위에 설 방법을 찾는 영민하고 못된 사람은, 투 머치 토커에게 침묵으로 '처벌'한다. 침묵이 가장 큰 처벌이 됨을 아니까.


그런 사람과 사귄 적이 있다. 어린 나는 지금보다 좀 불건강한 연애관을 가졌기에, 예뻐야만 사랑받는다고 믿었고, 연애 상대에게 내가 예쁘냐고 자주 물었다. 물론 연애에서의 예쁨은 외모만 포함하는 건 아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내가 사랑스럽냐는 말이었고,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를 사랑하냐는 뜻이었다. 굿 리스너라면 아무리 루틴의 대화라고 해도, 당연히 예쁘다고 하고 넘길 수 있을 말이었다. 억울해서 덧붙이자면 내가 하루 종일 그러고 있었던 건 아니고, 하루에 다섯 번 정도 묻긴 한 것 같다. 그것도 많다면 많지만. 그때의 연애 상대에게는 택도 없었다. 당시의 메신저 대화 전문은 이랬다.


"나는 예쁘구?"

"웅.."

"ㅇㅇ(상대방의 이름)는 나 좋아하구?"

"대충.."

"..?"

"하.."

"왜 그래?"

"피곤해"

"내가 뭐 잘못했어?"

"답정너야"

"...미안."

"생각해보고 연락해"

"뭐를...?"


그러고는 답장이 없었다. '답정너'란 당시에 유행하던 표현으로,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빤히 원하는 답을 정해놓고 그에게 그 답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어땠을까? 빈정이 상해서 오히려 본인이 연락을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내가 뭘 잘못했냐면서 따졌을 수도 있다. 유순하고 멍청했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시간 후에 나는 '미안해.. 나는 그냥 따뜻한 말이 듣고 싶어서 그랬어.'라는 문자를 보냈다. 또 한 시간 후에 '이렇게 계속 연락 안 할 거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또 두 시간쯤 후에,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원하는 대답 정해놓고 물어보는 짓 안 할게'라는 요지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래도 그쪽이 원하는 답이었던지, 그는 곧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30분쯤 후에 답장이 왔다.

"알면 됐어."


사실 더 심한 말을 들은 적도 많고 격한 말을 주고받으며 싸운 적도 있지만 이때의 대화가 유독 한이 맺혀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놓인 어린 내가 너무 불쌍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울며불며 싸우던 어린 한별은 조금 짠하긴 하지만, 그 뒤에 상황을 힘있게 헤쳐나갈 만큼 강해 보인다. 하지만 이 상대와 만날 시기만큼은 너무 나약하고, 초라해보인다. 모든 갈등을 내 잘못이라고 스스로 설득해야 했던, 그래야만 용서받을 수 있었던 그 관계가 너무 끔찍하다. 나머지 대부분 갈등은 '네가 이건 잘못했고, 그건 내가 잘못했어.'라는 타협과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는 과정이 가능했거나, '서로 잘못한 부분에 대한 타협이 안 되니 우리는 끝이다!'라는 파국이 가능했다. 그러나 마냥 상대에게 쥐고 흔들리던 2013년의 나는 '내 잘못이니까 제발 떠나지 말아줘'라는 스탠스를 유지해야 했고, 하루하루 내가 문제투성이라는 확신에 천천히 숨이 말라갔다. 그 확신을 깨는 데에는 꽤나 많은 사람의 오랜 노력이 필요했다.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였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가. 아무나 붙잡고 내가 예쁘냐고 물어본 것도 아니고, 서로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는 상대, 믿을 만한 사람에게 물어봤다고 나름 생각했던 건데 말이다. 세상에는 효율적인 대화만 있는 게 아니고, 하등 쓸데없어 보여도 관계를 쌓아올리는 대화가 있다는 걸 어떤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어린 나에게 면죄부를 주면서도 내심 두렵다. 내가 계속 마음을 확인하려 들면 상대방이 지쳐서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늘 있다. 10년 전의 망한 관계가 지금도 나를 은은히 안개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가끔 짝꿍에게 물어본다. 내가 만약에 하루에 백 번씩 나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면 짝꿍은 대답한다. 백 번 대답하면 되지. 그러니까 말이다. 내가 진짜로 백 번씩 물어볼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답이 정해져 있더라도 정해진 답을 기꺼이, 비효율적으로, 서로 대답해주는 지금의 관계가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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