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나 자잘한 과외 경험 말고, 나에게 직장다운 직장 경험은 딱 두 번 있다. 한 번은 학부생 때 어떻게든 스펙을 쌓겠다고 무지막지하게 자소서를 써낸 끝에 붙은 스타트업 인턴,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다 자연스럽게 하게 된 행정 조교 일이다. 그리고 두 번 다 건강과 멘탈이 바스러지면서 나는 직장에 다닐 만한 인재가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다닌 스타트업은 세 개의 부서가 하나의 회사로 합쳐진 형태였다. 화장품, 소개팅 어플, 패션이라는, 어떻게 보면 완전히 이질적인 세 부서가 건물 한 층에서 일했다. 한 회사 아래 있었지만 연계성이 대중에게 알려져 있진 않아서 비교적 독립적으로 일했다. 그중에서 패션 부서가 이름을 말하면 과반이 알 정도로 유명해서(실제로, 완전히 우연히 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갈 때 그 회사에서 산 옷을 입고 갔다. 같은 회사라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인턴하는 회사를 설명하기 귀찮으면 그 부서의 이름을 대곤 했다. 다른 팀과 교류할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였다. 나는 소개팅 어플 부서에서 광고를 제작하고 기타 잡다한 업무를 도맡아 했다. 잡무라고 해서 커피를 타는 수준의 시시한 일이 아니라, 회계 내역을 정리하는 등의, 인턴 나부랭이가 이런 걸 해도 될까-수준의 일이었다. 그래도 회사의 규모가 작았고, 그중에서도 우리 팀의 규모는 더 작았고, 어플리케이션 관리나 디자인은 부서가 따로 있어서 잡무가 많지는 않았다. 대강 말하면 내 주요 업무는 광고를 기획하고 직접 제작하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은 재미있었다. 소개팅 어플에 사람들을 가입시키기 위한 오만가지 방법을 매일 새롭게 떠올려야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건 나에게 일이라기보단 유희에 가까웠다. 오히려 재미있어서 문제였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이성애적 가치관을 나에게, 그리고 남에게 견고하게 주입해야 했다. 소개팅 어플의 세계에선 이성애자용과 동성애자용이 철저히 나누어져 있고, 우리 회사에서 제작한 어플은 이성애자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을 타깃으로 할 때는 '남자친구'라는 워딩을, 남성을 타깃으로 할 때는 '여자친구'라는 워딩을 사용해야 했다. 문제는 그런 고착화보다도, 연애를 권장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강권해야 했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인턴을 할 당시에도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남들이 연애하는 거 좋냐고 하면 당연히 좋다고 대답할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연애를 왜 안 하냐고 홀로인 친구들을 붙들고 설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소개팅 어플 부서에서 일한다는 건 연애를 강권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더 많은 유입을, 수입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고 협박을 해가면서. 우리 어플로 얼마나 많은 커플이 이루어졌는지 아냐며(당연히 아니다), 우리 어플이 없으면 올 여름도 당신은 외로울 거라며(설마). 그리고 특정 광고로 몇 명의 회원이 유입되었는지, 그 회원들로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렸는지가 가시적 그래프로 보인다는 사실이 재미있어서 더 무서웠다. 좋은 영향이건 나쁜 영향이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순간적인 짜릿함을 준다. 나는 사익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장기적으로 일하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무서웠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대학교 행정직은, 준-공무원에 가까웠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학교가 국립대였던 시절에 모든 직원의 근로 기준을 마련해서 실제로 공무원의 처우에 가까운 월급과 행정 시스템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유연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스타트업은 아주 작은 조직이어서 우리 팀 위에 바로 대표가 있었다. 팀의 사정이 있어서 어떤 일의 기한을 조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대표님은 딱히 나무라지 않았다. 각 팀의 사정을 훤히 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대학교에서는 학과 하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학과 위에 단과대 행정실이 있고, 단과대 행정실 위에 전체 행정팀이 있고, 전체 행정팀 위에 실제로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거대한 조직에 속해서 일한다는 건, 어떻게든 전체의 일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행정실에서 요구하는 기한에 맞추기 위해 교수님들과 강사님들께 서류를 독촉하는 기억이 대부분이다.
스타트업의 목표가 회사의 이윤과 덩치를 키우는 일이라면, 학교 행정실의 목표는 현상 유지였다. 나 혼자만의 공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인턴을 시작할 때와 비교해 끝날 때의 일 매출은 약 1.8배 정도 증가해 있었다. 그런 양적 성장이 나의 월급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언정 기묘한 성취감을 주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일할 때는 성취감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민원 없이 하루가 끝나면 그저 안도했고, 어쩌다가 문제가 터지면 해결하기 바빴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이전보다 나은 상태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그런 거대한 조직에서의 '해결'은 이전 상태로의 복구를 의미했다. 조교실의 가장 큰 역할은 사실상 총알받이였다. 교수님이 행정실에 가지는 불만, 학생들이 교수들과 행정실에 가지는 불만, 학부모가 학교에 가지는 불만(대학교에도 그런 학부모는 실존한다!), 일반인이 우리 학교에 가지는 불만(진짜로 대뜸 대학교에 전화하는 일반인들이 상당히 많다!)을 모두 조교실 전화로 해결했다. 민원인에 따라 가끔은 정공법으로, 가끔은 빙빙 말을 돌려 민원인을 지치게 만드는 방법으로, 때로는 법적 조치를 운운해 민원인을 겁주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다. 모두의 불만을 받아내 마치 불만이 없는 것처럼 고요한 수면을 유지하는 일은 몹시 피곤했다.
어쩌란 말이냐. 일이 재미있으면 회사의 이익을 따라가다 자아를 잃고,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면 일이 재미없어서 자아를 잃는 딜레마는, 내가 비-직장형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적어도 남들이 일반적인 직장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근무는 내가 할 수 있는 형태의 일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