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불쾌하다. 나는 실질적으로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고, 언젠가 식을 올릴 짝꿍이 있는데도 '결혼'이라는 단어에 대한 감정은 거의 비혼주의자와 가깝다. 문제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된 그 단어에 대한 이미지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천국이라는 말이 많았는지 지옥이라는 말이 많았는지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불행하고 싶지 않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지켜내고 싶기에 결혼이라는 단어로부터 나는 힘껏 도망친다.
엮인 단어들도 불쾌하다. 결혼과 지옥이 묶인 건 물론이고, 결혼과 출산이 묶여있는 것도 불편하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비교적 단호한 소신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혼자에게 따라오는 언어가 두렵다. 아이는 언제 가지냐느니 아이를 가지는 게 훨씬 행복하다느니 하는 말들. 언젠가 우리 둘이 지겹고 불행해질 거라고 치부하는 것도 짜증난다. 하긴 연인일 때도 우리가 불행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야 언제든지 있었지만 말이다. 때가 되었기에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지, 생각했다기보단 긴 시간에 걸친 고민의 결과로 이 사람과 운명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한 나로서는 우리가 서로 지겨워지면 좀 곤란하다.
좋을 때라는 말이 싫다. 좋을 때라는 말을 8년째 듣고 있는데 한참 전부터 지겨웠다. 나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사람이랑 좋을 건데, 마치 앞둔 불행을 기대하라는 듯 '지금이 좋을 때'라고 주장하는 nn년차 기혼 인간들이 짜증난다. 아내라는 단어도 싫다. 결혼하기 전과 비교해서 자기관리를 안 해서 더이상 좋아하지 못하는 거라고 합리화하는 남편들의 불만어린 목소리가 아내라는 단어와 묶여 있다. 남편이라는 단어도 싫다. 돈만 벌어오면 다인가, 뭐든 해줄 것처럼 굴더니 아내를 봐주지 않는 인간으로 변모해 버린 데에 대한 혐오가 그 단어 안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 내가 아내로서 그럴 거라거나, 내 짝꿍이 남편으로서 그럴 거라는 게 아니고, 이미 그 단어들은 낡아서 변질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구하게 부정적인 의미의 결혼과 묶여 버린 여러 단어들은, 아무리 내가 다르게 쓴다 해도 단어 자체가 풍기는 악취가 생겨버렸다.
새 단어가 필요하다. 나는 내 짝꿍과 인생을 함께하고 싶어서 같이 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둥지 안에서 협업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보고 듣고 느낀다. 짝꿍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할 만큼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배우자나 반려인이라는 말을 쓴다. 그 단어들은 왠지 덜 오염된 느낌이다. 우리는 때로 서로를 흔드는 바람이고 때로 서로를 비추는 태양이다. 서로가 서로의 아기이며 보호자이고 스승이다. 그뿐이다. 결혼이라는 단어에 줄줄이 따라오는 그런 말들로 설명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