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소꿉친구 빈이의 생일이다. 이제 나이가 쌓이다보니 10년이 훌쩍 넘게 친구인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그리고 그 중에는 빈이보다 훨씬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소꿉친구'라는 단어에는 빈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빈이와의 첫 만남은 좀 특별했는데 구민 체육센터 어린이 프로그램의 OT 날이었다. 걔는 선천적으로 사람을 잘 웃기는 애였고 나는 뒤집어지게 웃는 애였다. 둘이 한참을 웃다가 웃기다가 떠들다가 걔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대체 어딜? 싶었지만 나는 따라갔다. 걔는 자기 엄마한테 달려가더니 자기 엄마 손도 잡아끌었다. "가자!" 나와 아주머니는 영문도 모르고, 친구는 양손에 나와 자기 엄마를 잡고 우리 엄마를 찾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또 둘을 데리고 미짱에게 갔다. 걔는 엄마들을 앞에 두고 선언했다.
"우리는 앞으로 친하게 지낼 거니까, 두 분도 친해지세요."
나는 깜짝 놀라서 눈만 깜빡이고 엄마들은 당황해서 서로를 봤다가 우리를 봤다가 했다. 잠깐의 당혹스러운 침묵 후 엄마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다음부터는 뭐 순조로웠다. 얘네 좀 보라고 당돌하다고 우리를 놀리다가 둘이 통성명을 하고 번호를 교환하고 우리는 다시 우리끼리 놀았다. 진짜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다. 어른을 상대로 그런 이상한 선언을 하는 애는 여섯 평생 처음 봤다. 난 어쩌면 그때부터 좀 이상한 애들을 좋아한 것 같다.
그애와의 관계에서 나는 처음으로 질투라는 감정을 배웠다. 알고 보니 나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걔는 얕고 넓은 인간관계를 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애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싶었고 걔는 나를 기나긴 친구 리스트에 계속 올려두고 싶어했다. 나는 걔를 매일매일 만나고 싶었고 걔는 다른 친구들이랑 놀 때면 가끔 나를 모른 척했다. 다행히 그애의 이상한 선언 덕에, 우리 사이의 미묘한 틀어짐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의 의지로도 우린 자주 만났다. 걔의 여동생 민이는 내 동생이랑 동갑이었고 둘이서도 친해졌다. 만짱은 내 친구들 이름을 정말 못 외우는데 만짱의 머리에도 빈이 이름은 각인되었다. 나중에는 친구 관계가 넷으로 확장되었는데 넷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늘 그렇듯 둘 둘로 묶일 때도 빈이랑 나는 한 묶음이었다. 그렇게 다른데도 같았기 때문이다. 외동이었던 나머지 둘에 비해, 빈이와 나는 둘다 맏이였고 훨씬 장난꾸러기였고, 키가 작은 축이었고(어릴 땐 이상하게 키가 친구 맺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말이 많았다. 그런데도, 걔를 친구로 두는 게 자랑스러우면서 동시에 엄마들과의 관계 때문에 나랑 마지못해 노는 게 아닌가 싶은 양가적인 감정은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애를 여전히 소꿉친구라고 칭하며 내 인생에 넣어놓을 수 있는 이유는, 선언의 힘이 더 컸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M 동네에 살 것 같은 나날을 보내는 동안 걔는 옆 동네로, 심지어 몇 년 간은 다른 나라로 이사를 다녔다. 그냥 친구였으면 당연히 연락이 끊겼을 테지만 엄마들끼리 내내 붙어다녔다. 심지어 걔네 가족을 만나러 필리핀으로 가족여행을 간 적도 있다. 지금 우리는 서로 아주 다르다. 걔가 하는 얘기는 날 더이상 웃기지 못하고 내가 하는 얘기는 더이상 그애한테 흥미롭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이겼고 선언이 이겨서 우리는 여전히 만난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열 살도 안 되었던 시절 얘기만 주구장창 하는데 아직도 지겹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