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그래프를 봤다(독서 등 몇몇 항목이 잘못 위치되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대부분 일리가 있다). 시간낭비라는 관점에서, 재미도 의미도 높은 1사분면은 말할 것도 없이 시간낭비가 아니다. 아무래도 내 일상에서는 과외가 그렇다. 2사분면은 재미만 있고 의미가 별로 없어서 아쉽지만 잘 생각해보면 재미있었으니까 괜찮다. 하루종일 재미만 있고 의미는 없는 일'만' 하고 나면 오늘 대체 무엇을 한 건가 싶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3사분면이 시간낭비 그 자체다. 그래프의 '이동 중'은 정말 적절한 사례이다. 특히 서울처럼 풍경도 건물도 밋밋한 도시에서는 말이다. 4사분면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수록 많이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일반적으로는 2, 3사분면에 있는 것들을 '시간 낭비'라고 부르는 듯하다. 그런데 시간 낭비에도 인생 경험치가 필요하다. 짬이 좀 찬 나는 이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다 몇 시간이 손에 쥔 모래알처럼 후루룩 사라져버려도, 예전만큼 당황하거나 겁먹진 않는다. 시간낭비를 잔뜩 하다 보면 무언가에 물리적으로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 기분을 처음 느겼을 땐 공포스러웠다. 뭘 두려워하는지도 모른 채 막연히 겁을 먹은 거다. 어쩌면 유한성의 개념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의 겨울방학, 인생 두 번째로 버지니아에 갔을 때다. 5학년 때 처음으로 버지니아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미국에 가기 싫다고 울고 불고 떼를 썼는데 미짱이 그랬다. 우리 집은 그다지 여유 있는 집도 아니고 두 번 보내줄 생각은 없으니까, 딱 한 번뿐이니까 잘 다녀오라고. 미적거리는 발을 끌고 미국에 가서 한달이 지나선 나는 미짱에게 전화해서 울면서 말했다. "엄마. 나 여기서 살면 안돼?" 미짱의 그때의 황당함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1년간 졸라서 미국에 다시 가게 된 거다.
그렇게 간절히 원해서 돌아간 미국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시간낭비를 하게 되었다. 내가 홈스테이로 시간을 보낸 Shifflett 가족의 집에는 2층에 다락방, 지하실, 마당까지 있는 왕창 큰 집이었다. 사람이 지낼 만한 방이 6개쯤 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완전 내 거였다. 그 많은 방 중 하나는 Game room이었는데 5학년 겨울엔 자주 들어가지 않았다. Lauren이랑 Aron(친척 동생들)이 집에 놀러오는 날에만 가끔 카트 게임을 하는 정도였다. 속도를 겨루는 건 내 취향이 아니어서 게임에 푹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6학년 때 Animal Crossing이라는 게임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그 유명한 <동물의 숲>의 얼리 어댑터였다. 숲 속에서 동물들과 집을 꾸미고 과일을 따고 낚시를 하는 일에 퐁당 빠져버린 나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Game room에 앉아있었다. 겁이 났다. 어쩌면 한국에 돌아가서 게임에 시간을 날렸다고 후회하면 어쩌나에 대한 겁이었을 수도 있다. 게임은 우리 집에서는 더 엄격하게 금지되는 일이었기에 게임하는 행동 자체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재미에 빠져 시간을 탱탱 날리고 두려워해본 첫 경험이었다. 첫 경험에서 세게 배우고 그 이후의 경험에서도 잔잔히 배워, 이제는 시간 낭비를 적당히 하며 자제할 줄도 알고 흐르는 시간의 감각을 즐길 줄도 안다.
아무리 시간낭비를 많이 하는 날이어도, 위의 그래프에서 1사분면에 있는 일을 하나라도 한 날이면 무의미하게 보내 버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요즘은 매일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기가 오히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