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도 몰랐고, 무엇보다 당황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짤막한 두어 마디만 남긴 뒤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물론 진단이나 검사 등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알겠거니와 그 순간만큼은 의대생도 환자도 아닌 엄마가 필요한 아들일 뿐이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외래 한복판에서 흐느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생각보다 신기능이 이미 많이 떨어져 있다고, 나중에 신장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부모님께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해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집 앞 슈퍼에 잠깐 나갈 때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샤워를 해야만 했던 내가 그 순간만큼은 누가 나를 쳐다보든, 몇 명이 지나가든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소리 내어 울었다.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졌다. 뼈 빠지게 공부해서 이제야 그렇게 꿈꿨던 의사가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으려던 찰나에 단백뇨에 신기능 저하라니.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니. 내 머릿속은 비관적인 생각과 절망, 원망 등의 나쁜 감정들로 가득 물들었고 차라리 그냥 빨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기 이르렀다.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검색엔진에 'IgA 신증,' '신장 조직검사,' '신장이식' 등을 검색해서 관련된 내용을 계속 읽었다. 물론 병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교과서나 논문을 찾아보는 편이 맞겠지만 내게 필요한, 내가 알고 싶은 정보는 그런 게 아니었다. '평균' 생존율이나 '평균적으로' 호전되는 비율이 아니라 '나 한 사람'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어떤 질환의 5년 생존율이 90%라면 일반적으로 예후가 매우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질환 때문에 5년 이내 사망에 이르게 되는 나머지 10%의 관점에서 보면 그 질환은 최악의 불행이자 재앙일 뿐이다. '내가 걸리면 100%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여러 경험담을 읽다 보니 복약과 식이 조절로 잘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내 눈에는 결국 신장이식을 받게 되었거나 주 3회 투석을 받고 있다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왔다. 본과 시절 신장에 대해 배우면서도 신장 건강을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내 머릿속은 온통 신장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실하게 느꼈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와, 이를 안고 살아가고 이겨내야 하는 당사자인 환자가 병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