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샵 The Bookshop2017』
어린이 『아름다운 가치 사전』에 용기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을 이겨 내는 것. 두려움 때문에 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간략히 소개한 정의가 있다. 용기란 무모함과 어떻게 다른가? 무모한 일에는 고집이 따르지만, 용기엔 신념이 따른다. 그건 드러난 모습이 비슷할지라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플로렌스 그린은 전쟁미망인이다. 영국의 어느 어촌마을에 도착한 그녀는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 하드버러는 특별한 곳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던 의미 있는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로 새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순간의 결정이 아닌 오랜 시간 숙고해온 일이라 결심은 확고하다.
도서관도 변변찮은 마을에 서점이 들어서는 일은 용기를 가져야 하는 일이다. 하루하루 과중한 노동으로 책은 고사하고 밥 먹고 곯아떨어지는 게 대부분인 어촌의 일상에서 <올드 하우스>라는 간판을 달고 서점을 열었다. 문학과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그리움과 슬픔을 헤쳐온 그녀는 “책을 읽으면 그 이야기가 생생한 꿈처럼 살아 숨 쉬는 순간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이다. 그녀는 책을 사랑한다. 책은 그녀에게 자신을 지키고 가장 빛나게 한 등불이었다. 사람들과 이 좋은 것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런 선한 마음으로 서점을 열었을 것이다. 한 마을을 바꾸는데 거대한 시설이나 원대한 프로젝트가 마을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서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언어는 사람을 지배하고 좋은 책을 통한 만남은 세상을 항해하는 데 든든한 배가 되어 줄 것이다. 또 "누구든 서점에서는 외롭지 않다" 고한 그녀의 말처럼 외로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친구 삼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좋은 친구들(책)이 많았다.
아무 일 없을 듯 평온한 곳에서도 독초처럼 자리한 마을 실세이자 질투와 험담의 대가인 가맛 부인이 있다. 허영과 아집을 교양과 돈, 우아한 치장으로 가린 이 여자는 플로렌스 그린이 몇 년 동안 방치된 낡은 집을 개조해 서점을 만들려는 곳에 자신이 생각해둔 문화센터를 열 작정이었다며 훼방을 놓고 술책을 부리고 결국은 없는 법까지 만들어 권력을 이용해 빼앗는다. 남의 떡에 탐이 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이해하려고 해도, 아무런 노력도 생각도 없던 것에 오로지 이기심 하나로 억지와 고집을 부리는 모습은 우아한 차림 뒤에 감춘 시궁창 냄새나는 마음을 보게 된다. 자신에게 올 관심을 다른 이가 받는 것은 견딜 수 없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을 통제하고 숨통을 조여 놓는 인물이다. 자기 자신 이외는 진정한 친구가 아무도 없는 그녀는 세상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사실 스스로와 친구인지도 의심스럽다.
어촌마을에 서점도 낯선데 문화센터라니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찧고 빻고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그녀의 손길에 사람들은 굽신굽신 넘어간다. 더러운 돈과 권력 앞에 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악한 권력 앞에 숨는 자도 결국 잘못된 권력을 키우는 꼴이니 방관자이지만 또한 가담자다.
서점의 첫 손님이자 마을의 다독가 노신사 브런디쉬는 성안에 갇혀서 나오지 않고 서신으로 책을 주문한다. 그리고 둘은 책을 권하고 또 책 평을 묻다가 서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간다.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둘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만나는 달콤한 열매와도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브런디쉬는 플로렌스에게 가맛 부인의 흑심을 넌지시 알려주고 조심시키고 싶었다. 다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플로렌스의 단호함과 거칠 것 없는 용기에 오히려 그는 사람에 대한 실망과 타인에게 눈 돌리게 된 두려움을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오로지 플로렌스를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으로 몇십 년의 칩거를 뒤로 적진을 향해 전진하는 기사가 되어 나간다. 용기란 내 이득과 무관한 일 또는 두려움에도 일어서는 행동과 마음이다. 그가 『민들레 와인』을 기다렸는데 그가 없는 곳에 뒤늦게 도착한 책을 껴 앉고 그녀는 울게 된다. 이제 마음을 알아줄 사람을 잃고, 서점을 잃고, 희망의 장소였던 하드버러에 오만 정이 떨어져 결국 마을을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의 용기가 너무 일찍 꺾여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서점 초창기부터 등장한 크리스틴이라는 곱슬머리 귀여운 소녀는 서점 일을 야무지게 돕고, 플로렌스와 친해져서 그녀를 아끼게 된다. 어린아이지만 플로렌스을 돌보는 느낌이었다. 그녀도 책 읽기 싫어하는 크리스틴을 지성의 세계로 이끈다. 결국, 포기하고 떠나게 되는 플로렌스는 활활 불타는 서점을 보며 놀란 눈으로 부둣가에서 손을 흔드는 크리스틴을 본다. 그녀를 위한 가맛 부인에 대한 일종의 복수이자 플로렌스에게 주는 선물로 크리스틴은 서점을 불태운다.
이 마지막 반전은 마치 소녀에게 옮겨 붙은 희망과 용기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소녀의 손에 들린 책 한 권의 시작이 나머지의 삶을 바꿀 것을 암시한다. 크리스틴은 배웠다. 용기를. 사랑을. 진심을. 결국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키케로)라고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아한 흰 곱슬머리를 가진 할머니로 남은 크리스틴이었다. 그녀는 서점 주인이 되어 있다.
끝부분 플로렌스의 실망과 물러남, 갑작스러운 마무리로 급속히 끝나는 느낌에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책에 관련된 영화라서 보게 된 호기심을 충족하면서도 우리가 책을 통해 무장하게 되는 용기와 희망에 대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세상의 부당함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용기는 내 안의 신념과 선의의 마음으로 무장한 것이었다.
세상을 등지고 앉은 실망과 두려움을 열게 한 용기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 악과 맞서는 힘찬 것이었다.
세상에 정해진 당연한 여성의 삶에 등불을 밝힌 것은 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일으킨 희망이었다.
덧. 플로렌스 그린이라는 주인공 이름에서 비롯된 각종 다양한 그린의 패션을 볼 수 있다.
덧. 영국의 스산한 날씨와 오래된 서점의 짙은 나무 책장과 바닥이 서점에 대한 로망을 부추긴다
덧. 영국 억양, 차 문화와 소품 구경, 더불어 당시의 책 배달과 서점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북샵 The Bookshop , 2017 제작
스페인 외 | 드라마
2021.06.24 개봉
전체관람가 | 112분
감독 이자벨 코이젯트
평점 8.92
나의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