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업데이트
말레이시아로 골프 여행을 다녀왔다.
골프 리조트에서의 하루는 단순했다.
아침 먹고 골프 치고, 점심 먹고 골프 치고, 저녁 먹고 맥주 한잔 마신뒤 잠드는 일정.
매일 사무실에 앉아서 업무에 쫓기던 내게 열대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꿈만 같았다.
이곳은 정말 자연친화적인 곳이었다.
첫 홀에서 다람쥐들이 뛰어다니고, 다음 홀에선 도마뱀이 유유히 페어웨이를 횡단한다. 어떤 홀은 악어가 있는 늪지대를 끼고 있고, 또 어떤 홀에서는 원숭이 떼가 나타난다.
한국의 골프장에서는 쉽게 겪을 수 없는 장면들이다.
'크로커다일'이라고 불리는 코스가 있었다.
이름 그대로 악어가 산다는 이유로 붙은 이름인데, 문제의 사건은 바로 이 코스의 7번 홀에서 벌어졌다
원숭이 한 마리를 봤다.
"와, 귀여워!"라고 감탄사가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한 마리가 아니라 원숭이 떼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카트 운전석에도 한 마리, 조수석에도 한 마리. 녀석들은 태연하게 짐을 뒤지고 있었다. 허둥지둥 원숭이들을 쫓아냈지만 이미 늦었다. 드라이버 커버를 하나 물고 사라졌고, 그 커버는 여기저기 뜯긴 채로 나중에 발견됐다. 위 메인 사진은 이렇게 정신 없는 순간에 남긴 것이다.
다음날 같은 홀. 믿기지 않게도 거의 같은 장면이 다시 연출됐다. 이번엔 아예 파우치를 통째로 가져가버렸다.
이 파우치 안에 화장품은 물론 이어폰 등 중요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일행들이 모두 모여 원숭이들이 갈법한 곳을 샅샅이 뒤졌다. 여기저기서 물건의 흔적들을 발견했지만, 파우치를 찾지는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이어폰이 위치추적 덕분에 돌아왔다는 것.
여행 내내 이 사건은 우리들에게 단골 화제가 됐다.
그때마다 우리들은 '원숭이'가 아니라 '원숭이 놈들'이라고 말했다.
'원숭이 놈들 말이야.' 이렇게 '놈들'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원숭이는 동물원에서 만나는 사람과 조금 닮은 귀여운 동물이었다.
하지만 이 여행 이후 원숭이를 떠올리면 떼로 몰려와 물건을 낚아채던 야생의 악당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 원숭이는 나에게 이 말레이시아의 습격사건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 이미지는 이렇게 특정 사건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덮어 씌워진다.
원숭이와의 더 좋은 추억이 생기지 않는 한, 나는 계속 그들을 '악당 같은 원숭이 놈들'로 규정하게 될 것 같다.
기억이란 그렇게 업데이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