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된소리가 된다 (5)

한국인의 국어생활 37

by 집우주

군대에 간 아들, 남자친구가 있었거나 있다면 샴푸, 속옷 등 [싸]제를 사서 부대에 보내봤을 것이다. 사회제품(社會製品: 군 보급품이 아닌 민간인이 사용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단어인데 조합이 매우 어색하긴 하다.)의 준말이라는 '사제'는 언제나 [싸제]로 읽어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왜 그런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사전에서 사제를 검색하면 나오는 司祭, 師弟, 私製, 四諦, 舍弟 瀉劑, 賜第 등과 헷갈리기 때문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한국인은 이처럼 글자에도 없고 문법에도 없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된소리를 단어에 집어넣는다. 된소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라지만 좀(조금 아니고 많이) 너무한 면이 있다.


그런데 입맛 따라 달라붙는 된소리는 사실 중요한 기능이 있다. 그저 좋아서 된소리를 씹고 즐기는 것 같지만 한국인은 된소리를 활용해 단어를 구분한다. 아래 단어들을 보자.


* 다른 - 딴

* 조금 - 쫌

* 선생님 - 쌤

* 포토샵 - 뽀샵

* 것 - [꺼]


된소리가 들어간 단어는 기존 단어에서 파생되었거나 원형에서 착안해 새로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앞서 살펴본 단어들처럼 단순히 된소리가 더해지거나 처음부터 쌍자음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단어의 자모음이 축약, 생략되며 전체적으로 글자 요소가 줄고 있다. 나는 한국인이 그렇게 해서 생긴 글자의 빈 공간, 허전한 발음을 쌍자음과 된소리로 채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동시에 된소리(쌍자음)은 표기, 의미, 어감 등에서 기존 단어와 달라진 부분을 선명하게 대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은 두 가지 의미로 쓸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야."와 "다른 사람이 왔어."라고 할 때 '다른'은 다르다. 전자는 형용사의 관형사형이고, 후자는 관형사다. 차라리 영어 단어로 설명하는 게 쉬울 것 같은데 각각 different와 other로 보면 된다. ('다르다'로 서술할 수 있는 건 형용사다. '딴'은 관형사라서 '따르다'의 형태로 쓸 수 없다. 사전에서 형용사를 찾으려면 ‘다르다’로, 관형사는 ‘딴’ 또는 동의어인 ‘다른’으로 찾아야 한다. ) '딴'은 오직 other에 해당하는 ‘다른'일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딴 사람이 왔어."로 바꿔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으니 상황과 느낌에 맞게 골라서 말하면 된다. 된소리가 자칫 헷갈릴 수 있는 단어의 뜻과 품사를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하지만 띄어쓰기 없이 한 단어로 인정된 딴짓, 딴소리, 딴청, 딴전 등은 '다른'으로 바꿀 수 없다.) 관련해서 찾다 보니 온라인가나다에 '단'을 쓰면 안 되냐는 질문도 있었다. 언뜻 엉뚱한 질문 같지만 '다른>단'의 과정으로 ㄷ을 그대로 유지해서 "단 사람이 왔어."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그런 단어, 문법을 인정하지 않았고 된소리를 넣었다.


다른을 줄인다고 해서 단이 되지는 못하지만 '조금'을 줄이면 '좀'이 된다. 거기에 된소리를 더하면 '쫌'이다. 사전에서 쫌은 ''조금'의 방언'로 나온다. 이 말의 출발한 곳이 어느 지방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이제는 그렇게 다루면 안 된다고 본다. 사실 쫌은 전국구가 된 지 오래다. 오늘날 한국인은 이 세 단어를 상황에 맞게 골라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공식적이고 격식과 예의를 차리는 자리에, 좀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어울린다. 쫌은 편하고 친근하지만, 한편 날카롭고 자극적이다. 현실에서 조금과 좀과 쫌이 쓰이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의미가 같다고 해서 세 단어를 바꾸어 쓸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쫌을 '조금/좀의 센말'로 표준어로 인정하는 게 낫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선생님'과 '샘'과 '쌤'도 같지 않다. 사전의 정의대로 외국인 학생에게 이들을 teacher라는 뜻으로, 샘은 선생님의 준말이고 쌤은 샘의 센말로 알려줄 수 있겠지만 추가적인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처음 쌤이 생겼을 때 이 말을 ‘샘’으로 표기하지 않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조직문화 혁신을 목적으로 수평적 호칭제를 도입하기로 하며 구성원 간 호칭을 쌤('님'도 있다.)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그보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선생님을 쌤으로 부르지 말자는 주장이 있었으니 짧은 시간동안 세상이 달라졌다.) 이에 대해 옳으냐 그르냐, 동의하냐 않느냐의 판단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학생들끼리 사용하던 은어였던 쌤이라는 단어의 지위가 십여 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어선생님'과 '국어쌤'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선생님 세 글자가 어떻게 쌤이 되었는지도 참 신기하다. 나름의 추론으로는 사투리에서 시작해 '슨상님>스앵임>샘>쌤'의 과정을 거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수 사이먼 도미닉을 쌈디라고도 하는데 '사이먼'이 '쌈'이 된 것도 놀랍다. 그렇다고 외국의 수많은 사이먼들을 쌈으로 바꾸지는 마시라. '쌈 앤 가펑클'이 웬말인가.)


'뽀샵'도 '포토샵'에서 파생된 신조어지만 의미와 어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포토샵 할 줄 알아."와 "뽀샵 할 줄 알아."는 분명히 다르다. 어도비(Adobe)사의 프로그램인 포토샵(photoshop)을 사용할 줄 알아야만 뽀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뽀샵과 비슷한 포샵도 있는데 둘도 느낌이 좀 다르다. (포샵은 포토샵의 준말로 오픈사전에 나오지만, 뽀샵은 없다.) 포샵이 최소한 누끼(이미지의 배경을 지워서 원하는 부분만 떼어내는 작업)를 따거나 레이어 마스크를 활용한 합성 등 기술적인 부분을 다루는 스킬로 들리는 반면, 뽀샵은 왠지 '뽀얗다', ‘뽀샤시’와 연결되어 증명, 인물사진의 얼굴을 밝게, 예쁘게, 환하게 만드는 작업으로 한정되어 쓰이는 것 같다. 포토>포>뽀로 파생되었지만 셋은 다른 단어가 됐다.

가장 많이 틀리는 맞춤법의 대표적인 예로 '내 꺼'가 있다. 꺼는 '것'을 구어적으로 이르는 말로 규범 표기는 '거'로 정의되어 있고, 표준발음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분위기를 한껏 잡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볼을 콕 집으며 '내 [거]'라고 말해보자.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은 당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게 웃음을 터뜨리거나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뭐라고 했는지 되물을 것이다. (그때가 비웃음을 당하기 전 마지막 기회이니 부디 분명히 [꺼]라고 말하길 바란다.) 달달한 애교를 부릴 상대가 없다면 지나간 유행가를 불러봐도 좋다. "요즘 따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 난 듣기 싫어졌어.) 그런데 한국인은 '좋은 거, 나쁜 거'처럼 형용사가 수식하는 '거'는 규범대로 [거]로 읽지 않나? 가수 정기고가 노랫말을 내 [꺼]로 발음한 건 그 '거'가 소유이기 때문이다. (가수 소유 말고 所有 말이다.) '내 거, 니 거, 제 거, 우리 거, 누구 거?'에서 들리듯 한국인은 소유하는 '거'만 [꺼]로 소리낸다.


이렇듯 파생어, 신조어가 기존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거나 세분화해서 쓰일 때, 된소리는 이 둘을 구분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심지어 나는 된소리로 한국어 시제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된소리가 없는 현재 시제)

* 쉬다 + 어요 → 쉬어요[쉬어요]

* 쉬다 + (스)ㅂ니다 → 쉽니다[쉼니다]

(된소리가 있는 과거, 미래 시제)

* 쉬다 + 었 + 어요 → 쉬었어요[쉬어써요]

* 쉬다 + 겠 + (스)ㅂ니다 → 쉬겠습니다[쉬겓씀니다]

* 쉬다 + (으)ㄹ 거예요 → 쉴 거예요[쉴꺼예요]

* 쉬다 + (으)ㄹ게요 → 쉴게요[쉴께요]


한국어의 현재 시제는 어간(語幹)에 종결어미만 붙이면 된다. 그러나 과거나 미래를 말할 때는 어미가 더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았/었/였, 겠'의 ㅆ받침은 모음이 이어지면 연음이 되어 [ㅆ]소리가 그대로 발음되고, 자음과 만나면 '었고, 었지만, 었습니다 [얻꼬, 얻찌만, 얻씀니다]'처럼 경음화가 일어난다. '(으)ㄹ 것이다', '(으)ㄹ게요' 같은 표현도 ㄹ받침의 영향으로 ㄱ이 [ㄲ]으로 발음된다. 물론 먹습니다[먹씀니다], 있어요[이써요]처럼 현재 시제에도 조건에 따라 문장 끝에서 된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있지만 확률적으로 그 수는 굉장히 적을 것이다. (수를 세어보는 것은 미친 짓에 가깝고, 된소리만으로 시제를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된소리가 날 조건이 덜한 현재 시제에서 그 비율이 가장 낮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지금껏 살펴본 된소리의 기능을 언어생활에서 잘 활용해 왔고, 또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해졌다. '딩동댕'과 '땡', '가위바위보'와 '묵찌빠', '아빠/오빠'와 '엄마/언니', '아들'과 '딸'에 왜 한쪽에는 있는 된소리가 그 반대쪽에는 없을까? 단어를 만들 때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 언젠가 이들의 어원이나 관련된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되면 그 이유나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우연으로 보고 있다. (당연히 우연일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쪽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음모론으로 빠지기 쉽다.) 다만 이번에 된소리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모든 단어들을 된소리(쌍자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이분법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래는 그러다 보니 정리하게 된 단어들이다. 아무 근거도 없는 이야기니, 그저 재미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 이/가 - 께서, 에게(한테) - 께

* 까? - 냐?

* 잊어버리다 - 까먹다 - 깜빡하다

* 어떻게 - How


한국어에서 대상을 높일 때 조사 '이/가'는 '께서'로, '에게(한테)'는 '께'로 바뀐다. 높임말에만 된소리가 들어가는데, 왜 그런 걸까? 이는 의문문에서도 유효하다. '(스)ㅂ니까?, (으)ㄹ까?, 오리까?'처럼 윗사람에게나 공손한 질문은 '까?'로 여쭙는데, '나요?'나 '냐?'로 물어볼 때는 된소리가 없다. ('여쭙다'에 있는 된소리가 '물어보다'에는 없다.) '잊다-먹다-깜빡하다'는 각각 머리, 입, 눈에서 나온 단어인데 한국인은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개인적으로 잊어버리다>까먹다>깜빡하다로 갈수록 증상이 더 많이, 자주 나타나는 느낌이 든다. 심해지는 증세와 된소리(쌍자음)의 증가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을 아닐까? (이쯤에서 나는 음모론자가 되었다.) 세계로 시야를 넓혀보자. 육하원칙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다. 영어에서는 이른 바 5W1H라 불리는 who, when, where, what, why, how다. 어떻게에만 된소리가 들어있고, how만 시작하는 소리가 다르다. 된소리와 [h] 발음은 성대의 막힘, 근육의 긴장을 활용하여 나머지 단어들에 비해 유독 귀에 들어오는데, 이거 참, 공교롭지 않은가? (인류는 달에 간 적이 없습니다!)


궁금한 것들은 계속 튀어나온다. 왜 시간에는 있고 공간에는 없을까? (때-곳), 왜 출발에는 없고 도착에는 있을까? (에서,부터-까지), 왜 온도가 높으면 있고 낮으면 없을까? (뜨겁다-차갑다), ... , 왜 시작에는 없고 끝에는 있을까?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 끝이 없다. 이러다가는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끝!



** 참고 **

에듀프레스. 학교서 ‘선생님’ 호칭 사라지나?...서울교육청 ‘님’ ‘쌤’으로 변경

http://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3260

조선일보. [생각해 봅시다] ‘선생님’을 ‘쌤’이라고 부르지 말자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25/20140925052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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