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40
앞선 글에서 영어와 비교해서 한국어가 단어의 순서와 첫 글자에 집착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언어라는 걸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한국어 내부로 들어가 보자. 한국어의 단어는 크게 고유어(순우리말), 한자어, 외래어로 나뉘는데 이중에서 고유어와 한자어를 합친 비율이 90~95% 정도 된다. 이번에는 이렇게 사용량이 많고, 오래도록 사용해 온 고유어와 한자어 단어를 언어·문화·사회적 관점에서 비교해 보려고 한다.
* 아버지, 어머니 - 어버이
* 부, 모 - 부모
고유어와 한자어는 다른 언어에서 출발했으니 우선 단어의 결합, 조합 방식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고유어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둘을 함께 부르는 '어버이'도 있다. 언뜻 어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에서 한 글자씩을 가져온 단어라고 생각되겠지만 이는 현대 국어의 표기상 우연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각각의 본말이 무엇인지에는 이견이 있고 정확한 어원은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한국인이 어버이라는 단어에서 두 분의 순서를 따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인이 어버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어버이는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어버이날'과 피켓을 들고 고함을 치는 '어버이연합', 극렬히 반대되는 이미지의 두 이름 이외에는 쓰이지 않는다. 심지어 북한에서 어버이는 초대 최고지도자인 김일성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어버이날이 아닌 '어머니날'로 부른다. (우리나라도 원래 어머니날이었는데 1973년 의미를 확장하며 어버이날로 바꾸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결을 가진 단어가 있는데도 한국인은 한자어인 '부모'를 사용한다. 왜 한국인은 어버이를 버리고 부모를 모시며 살게 된 걸까? 나름의 생각은 사회가 변하고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하게 되고, 이 단어들을 만드는 데 어버이보다 부모가 더 편했기 때문으로 본다. '부모님, 조부모, 부모상(喪), 편부모, 부모 형제, 부모 세대' 등에서 보이듯 한자는 의미를 더하면서도 비교적 글자 수를 적게 유지할 수 있는 문자다. 만약 이들을 고유어로 바꾼다면 단어가 너무 길어지고, 또 쉽게 할 수 없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논리라면 그냥 아버지, 어머니를 "부", "모"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지만, 한국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윗사람을 한 글자로 부르는 건 왠지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한 글자짜리 호칭인 '나, 너, 야'는 아랫사람이나 편하게 할 수 있는 반말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형'은 동생의 입장에서 보면 왕위나 유산을 독차지하는 경쟁자 아닌가?) 부(父), 모(母) 두 글자는 한국어에서 문어체(文語體)로만 사용되며 가족관계를 묻는 행정 서류에서만 쓰이는 정도다. 그러고 보니 중국어에도 父母[fùmǔ]가 있지만 爸爸(아버지), 妈妈(어머니)처럼 다른 한자를 쓰고, 그것을 반복해서 두 글자로 만들었다. (설명을 보태면 부모(父母)는 살아계신 분들을 가리키며, 돌아가시면 각각 고(考), 비(妣)로 쓴다.)
한국인은 보통 '아버지, 어머니' 순으로 말하고 쓴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적 이슈로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만약 순서를 바꾸고 싶으면 '어머니, 아버지'로 말하면 되고, 그건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다. 물론 이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없다. 한국인은 분명히 아버지, 어머니(가나다 순)의 순서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굴지 않는다. 결국 부모를 모부로 바꾸자는 주장은 한국인이 '아버지, 어머니 - 부모'의 짝으로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남녀(男女), 부부(夫婦), 형제자매(兄弟姊妹)에서 보이듯 특히 한자어에 남성이 항상 앞에 쓰이니 남성 중심의 시대상이 반영되었다는 합리적 추론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형제는 남녀 구분 없이 쓰였으나 의미가 좁아졌다.) 또 부모의 경우는, 모부로 바꿨을 때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만약 '운명-명운(運命-命運), 연관-관련(聯關-關聯)'처럼 두 글자가 결합으로 이루어졌지만 순서를 바꿨을 때 의미와 사용방식이 달라진다면 이 주장에 힘이 실릴 수가 없게 된다. 서두에 함께 다루었던 '식의주, 술기'도 이런 점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발음이 크게 이상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순서를 바꾸자는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토대로 한국인이 첫 글자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조건을 정리할 수 있다. 대체로 대등한 것을 나열해서 쓰는 한자어에서, 표준어로 인정된 이 단어들에 특정한 순서가 반영되어 있다고 믿고 그 순서를 바꾸어도 괜찮을 때다. 만약 한국인이 품이 더 들더라도 순우리말을 사용했다면, 또 한자가 기존 단어를 순서대로 붙여쓰지 않고 중립적인 새 단어를 만드는 문자였다면 이런 주장 자체가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의 첫 글자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을 자극하고 집착을 극대화하는 것은 이렇게 언어, 사회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환경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무엇을 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순서를 바꾸자는 주장은 첫 글자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낸 것이다. 하지만 순서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비중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크게,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다. 앞선 글에서 살펴봤던 영어 못지않게 한국인은 단어를 만들 때 발음, 어감, 단어로서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 요인들에 의해 순서가 결정된다.
㉠ 수저, 손발, 낮밤-밤낮, 암수(엄빠)
㉡ 눈코입귀-이목구비, 가위바위보-묵찌빠, 옥메와까
㉢ 아나바다, 찐찌버거
㉣ 강서송, 노도강
㉠은 대등하거나 대립하는 한 음절짜리 순우리말 단어 두 개를 결합해 만든 단어들이다. 내가 만약 젓가락이야말로 한국(동양)을 대표하는 문물이고, 그동안 신체 활동에서 더 고생하고 희생한 발을 첫 글자로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함께해 줄 독자가 있을까? 아무 문제없이 잘 사용하고 있는 이 단어들을 굳이 '저수'와 '발손'으로 바꿔야 할 명분이 첫 글자 때문이라는 데 동의할 한국인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저의 어원을 따지면 숟가락인 ‘술’과 젓가락인 ‘져’가 결합되어 ㄹ받침이 탈락한 것으로 이를 뒤집어서 쓰면 '져술'이나 '저술'이 되어야 하는데 이 단어는 더 이상하다. (영어 사용자들도 'knife and fork(칼과 포크), bread and butter(빵과 버터)' 순으로 말하는데 절대로 이를 뒤집어서 말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낮밤'은 순서를 뒤집은 '밤낮'도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해당하는 한자어인 '주야(晝夜)'는 '야주(夜晝)'로 바꾸지 못한다. 내가 볼 때, 한국어는 한자에 비해 특정 순서를 고집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라는 생각이다.
순우리말인 '암수'나 신조어인 '엄빠'에서는 여성이 첫 글자에 쓰인다. 부모를 모부로 쓰자는 여성계 일부의 주장이 있으니 암수와 엄빠의 순서도 바꾸자는 남성계의 주장도 있을 법한데 나는 여태껏 그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암수'를 동물에게만 쓴다며 인간이 아닌 경우에만 여성을 앞에 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솔직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논리라고 본다.) 나는 일부 남자들일지라도 이 이슈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심지어 구글에서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를 치면 검색결과가 자동으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로 바뀌는데도 문제를 제기하는 남자들이 아무도 없다.) 남자들이 젠더 이슈에 상대적으로 무던해서라기보다는 '수암'과 '빠엄'이라는 단어로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발음이 불편하고 이상하다 못해 괴상하게 느껴지는 이 단어들을 써 달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자신이 없다.) 한국인이라면 성별을 떠나서 '엄마-아빠'가 훨씬 편하다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감각적으로 느끼고 익혀서 알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미안하지만 한국인의 입에서는 무조건 언제나, 엄마가 먼저다.
㉡의 단어들에서는 글자 순서가 발음이 편하도록 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사람 얼굴에 있는 대표적인 신체 부위를 말할 때 이목구비(耳目口鼻)라는 한자어를 쓴다. 사전에는 한자에 쓰인 순서대로 '귀, 눈, 입, 코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써 있지만 실제로 한국인이 이들을 말할 때 가장 편한 순서는 '눈, 코, 입, 귀'다. (만약 이 순서대로 한자를 바꾸면 '목비구이'가 되는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자칫 음식이름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한 손을 앞으로 내어 '가위바위보'를 순서대로 만들어 보자. 손가락 일부를 폈다가, 완전히 접었다가, 다시 다 펴야 하는 순서가 왠지 번거롭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묵찌빠'로 해 보자. 순서가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가위바위보'와 '묵찌빠'의 순서는 손가락의 움직임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다. 가위바위보는 전세계에서 하는 놀이이니 다른 나라로 가 보자. 중국에서는 '石头剪刀布(바위가위보)', 스페인어는 'Piedra, papel o tijeras(바위보가위)', 태국에서는 'กรรไกร กระดาษ หิน(가위보바위)'다. 영어도 보통 'Rock Paper Sicissor(바위보가위)'이지만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다르게 하기도 한다. 문화의 차이로 인식되는 이런 현상은 각 언어에서 발음이 편한 쪽으로 단어의 순서를 정한 데서 기인할 것이다. 2007년에 방영되어 큰 화제가 된 롯데제과의 '옥메와까' 광고는 자사 아이스크림인 옥동자, 메가톤바, 와일드바디, 까마쿤의 첫 글자를 조합한 이름이다. 이 네 글자를 4!(팩토리얼)의 경우의 수로 조합해 보자. '옥메와까'라는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이름이 가장 부르기 쉽고 편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롯데제과는 2019년에 같은 방식으로 '앙쌀찰찰(앙빠빠샌드, 쌀로달, 찰옥수수, 찰떡아이스)'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조합해 보면 글자의 단독 발음을 유지하면서 가장 발음이 편한 쪽으로 결정한 것이다.)
앞서 글자를 바꾸고 섞어가며 기어코 MAMAA, DESK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영어처럼 한국어도 신조어나 줄임말을 만들 때 가능하다면 기존 단어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엄빠의 사례를 잠깐 다시 보면, 만약 아빠-엄마로 순서를 바꾸고 아빠의 첫 글자를 고집한다면 '아엄'이나 '아마'로 써야 한다. 그러나 이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던 '빠엄'보다 더 단어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의 아나바다, 찐찌버거는 줄임말을 만드는 방식이 똑같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 단어들에 '바다', '버거'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 줄임말을 만든 사람은 마치 '○○바다, △△버거'처럼 보이고 들려서 사람들이 쉽게 단어를 기억하고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순서를 정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바꿔 쓰고 다시 쓰는 것'을 처음에 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완성도를 따질 때, 부정적인 의미나 어감의 단어를 피하는 것도 고려된다. ㉣의 '강서송(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과 '노도강(노원구, 도봉구, 강북구)'은 흔히 부동산 시장에서 서울의 강남 3구와 강북 3구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나는 강남과 강북을 대표하는 줄임말이기에 당연히 '강남'구와 '강북'구에 있는 글자 '강'이 맨 앞에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노도강은 그러지 않았다. 강 다음에 도가 오면 '강도(強盜)'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생기기에 이 조합을 피한 것 같고, 나머지 경우에서 가장 발음이 편한 것을 골랐을 것이다.
이번 주제에서 한국인이 단어의 순서, 특히 첫 글자에 욕심을 부리는 행태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어 그것을 꼬집는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관련해 자료를 찾으면서 이는 한국어의 언어·사회적 조건 때문에 가능하고, 일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문제라고 판단했던 사람들의 욕심을 통해 오히려 언어가 사람들의 어떤 마음을 가능하게 하고 금지하고 있는지, 또 사람들이 무엇을 가치있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단어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다르게 이해(理解)하고, 이해(利害)를 따지는 입장도 다 다르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지만, 또 모두의 이익을 위해 양보하고 협력한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선은 '광대(광주-대구)'였는데 이제는 '달빛(달구벌-빛고을)'으로 부른다. 언어에는, 우리 한국어에는 한국인의 삶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