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는 먹요일이 될 수 있을까? (1)

한국인의 국어생활 54

by 집우주

치팅데이는 먹요일이 될 수 있을까? (2)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건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다. 여행이든 유학이든 또 펜팔, 채팅앱을 통해 사귀게 되었든, 아니면 사업차 만난 파트너에게 단 한 번이라도 한국어를 한 마디 정도 가르쳐 준 적이 있다면 그 느낌을 잘 알 것이다. "안~뇽~하세요, 코~맙~슴니다" 같은 서툰 발음에도 엄지손가락을 치켜 쌍따봉을 날리며 기쁘게 박수를 쳐 주었던 몇몇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요즘은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져서 외국인들에게 이 정도 인사말은 기본이지만 (게다가 발음도 좋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 앞에서 한국어로 한 마디를 하려고 노력하는 그 마음에는 언제 어디에서든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외국인과 오래 지내게 되었고, 서로 말을 가르쳐 주고 배우기로 했다고 해 보자. 위처럼 처음에 간단한 한국어 한두 마디를 가르쳐 줄 때는 정말 적극적으로 기쁘게 설명을 다해 줄 것이다. 그 외국인은 당신의 친절에 관심이 커져 한국어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교재를 사서 한글을 익히고 단어를 하나둘씩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당신은 책에 실린 단어의 뜻과 대화의 내용을 알려 준다.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참 뿌듯하고 멋진 장면이다.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를 배우는 것이 정말 재밌고 즐겁지만, 곧 위기가 닥쳐온다. 사실, 자신이 한국어를 잘하기에 잘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국어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외국어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자. 영어라고 한다면, 문법과 단어를 익히며 체계적으로 정리된 학습과정을 따라 논리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모국어로 배운 한국어는 전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기초교육과정에서 국어를 배우긴 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모국어로 한국어를 익히고 한평생 한국어를 쓰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겪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너무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신들의 언어에 대해서 물어보면 대부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한국어를 전공하거나 전문적으로 가르쳐 본 적이 없다면 아마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외국인 친구에게 몇 번의 정성은 다하겠지만, 금방 싫증이 나고 귀찮아질 것이다. (한국어 학원이나 과외가 괜히 있는 건 아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던 시절에 어느 외국인 학생은 자신의 한국인 애인이 한국어를 잘 모른다며 'bad teacher'라고 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어 교육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맞닥뜨리게 되는 위기는 여럿이지만 이번에는 그 중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 한국말/한국어, 나물/채소-야채, 나이/연세, 가지/종류, 나라/국가, 사람/인간, ...


사전을 찾으면 뜻은 같거나 비슷하지만 글자의 모양은 다른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는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지만 초급에서 배우고 관련해 사용될 수 있는 단어를 몇 개만 적어봤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단번에 단어 사이의 차이를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앞의 것은 순우리말인 고유어이고, 뒤의 것은 한자어다. (한국말의 '한국(韓國)'은 한자어이긴 하지만 나라 이름으로 대체할 것이 없는 걸 감안하자.) 하지만 한국어 단어의 유래나 종류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이 단어들은 모두 한글로 쓴 한국어 단어일 뿐이다. (물론 미안하게도, 한국인 중에서도 언어나 한자어 공부가 부족하면 모를 수 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나물'과 '채소(菜蔬)/야채(野菜)'처럼 비슷해 보이지 않거나 완전히 소리가 다른 단어들을 같은 뜻으로 알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이 단어들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려면 한국어 단어에는 순우리말인 고유어, 중국의 한자로부터 유래한 한자어,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어에서 넘어온 단어들까지 있다는 개념도 아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사용에 있어서 분명히 그 방식과 영역이 다르다. 우리 역사의 문명과 통치의 힘의 관점에서 볼 때, 한자어는 지배계층과 지식인들만 배울 수 있는 문자였다. 그래서 아무래도 공식적, 전문적인 분야에는 상대적으로 한자어가 많이 사용된다. 또 '나이'와 '연세(年歲)'에서 보듯이, 한자어가 높임말로 사용되는 경향도 있다. 단순히 단어의 뜻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한국어 문장을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한국말'과 '한국어'에 있는 '말'과 '어(語)'를 고유어와 한자어의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語)'의 뜻인 고유어인 '말'에 해당하는 뜻으로, 대부분의 경우에 둘을 어느 쪽으로 써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두 단어는 같은 뜻이고 아무 거나 써도 된다고 하면 안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어'는 보다 공식적이다.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도 분명히 어색한 경우가 있다.


저는 한국말/한국어를 할 수 있어요.

여기에 한국말/한국어로 쓰세요.


㉠은 둘 중에 어느 쪽을 써도 된다. 하지만 ㉡에서 '한국말'은 뭔가 이상하다. '말'은 사전에서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로 나온다. '말'이라는 단어에 있는 '소리'의 뜻이 '한국말'이라는 단어에도 그대로 들어있어서 그런지, 동사 '쓰다(write)'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또 특정 단어에서는 쓰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사전에는 없지만 '영국말, 영국어'이라고 해도 그 의미와 의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英語)'는 되지만 '영말'은 안 된다. 중어(中語), 일어(日語)는 가능해도 '중말, 일말'은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말'과 '어(語)'가 같은 뜻이라고 해서 둘을 같다고 가르쳐서는 안 되는 이유고, 당연히 한국어와 한국말은 다른 것이다. 영어로는 'Korean (Language)' 하나로 바뀌는 '한국말, 한국어' 두 단어가 이처럼 사용 영역과 방식에 있어서 너무나 다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위 단어들이 다시 보일 것이다. '가지/종류, 나라/국가, 사람/인간'은 분명히 다르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한국어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가지'와 '종류(種類)'를 바꾸어서 쓸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한국인을 하나로 만드는 '우리'에 '나라'는 있지만 '국가(國家)'는 없다. "으이구~ 정신 차려!"라는 꾸지람이 향하는 '사람'과 '인간(人間)'은 다르다.


우리와 역사, 문화, 언어를 오래도록 공유한 한자어와의 차이도 이런데 영어권 중심의 외래어, 외국어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수없이 많지만 이것도 한 줄만 적어본다. 아래 단어들을 한국어 문장 내에서 마음대로 바꾸어 쓸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말하자면, 번역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 놀이/게임, 문자/메시지, 마당(정원)/가든, 사진기/카메라, 색안경/선글라스, 책임자/데스크, ...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 주제인 순화어(醇化語)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순화어'도 '다듬은 말'로 다듬었다.) 보통 순화의 대상이 되는 단어는 어려운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이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는다. 그러니 한국어 단어의 양적 측면에서 보면, 의미가 같은 단어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앞서 살펴봤듯이, 한 단어는 하나의 대상을 가리키거나 하나의 의미만 갖고, 그 쓰임 역시 오직 하나라고 본다. 그래서 같은 뜻이거나 비슷하게 쓰이는 단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같을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쉽고 예쁜 우리말 순화어를 수없이 만들었지만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 단어들이 쓰이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가 추측하다시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유들 중 하나로, 기존 단어의 뜻을 너무 똑같이 담아내려고 하려고 했던 이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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