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53
<시경(詩經)>을 통해 子가 아가씨, 즉 결혼하지 않은 어린 여자, 부모의 입장에서 딸을 말하는 글자로 쓰인 것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미 한·중·일 삼국의 사전에서도 알아봤듯이 동물의 새끼나 알이나 식물의 열매, 씨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子는 생명이 있는 동식물이 유성생식(有性生殖)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물, 이제 막 태어난 생명, 그것의 어린 상태를 가리키는 뜻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이를 한자라는 글자가 가진 특성으로 풀어볼 수도 있겠다. 한자는 기본적으로 획수가 적을수록 원시적이며 근본에 가깝고, 획수가 많을수록 복잡하고 복합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 子를 아래와 같이 나누어보자.
* 子 = 了 + 一
了는 흔히 '마칠 료'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한자사전을 보면, 了를 막 태어난 아기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了가 가진 '마치다, 끝나다, 완료하다'라는 뜻은 '출산의 고통이 끝났다'는 것으로 풀이한다. 여기에 一(한 일)이 써 있는데 一에는 '온, 전, 모든'의 뜻도 있다. 그러니 子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전 과정이 온전하게 끝나서 생겨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글자의 모양으로 봐도, 子가 이제 막 태어난 생명의 어린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자의 모양으로도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볼 수도 있다. 了는 이제 막 태어나 웅크리고 있는 신생아, 子를 스스로 두 팔을 벌려 움직이는 아이로 보는 해석하기도 한다. (자연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고 발견해낸 결과물의 측면에서 보면, 앞서 물건이나 물리용어에 왜 子를 썼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중국어 사전에 나온 대로 분명히 고대에는 子가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 아기, 아이, 자식이었는데 역사의 어느 시점, 흐름에서 아들의 뜻으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아들로 대(代)를 이어온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글자의 사용이 달라졌다고 추측할 수 있고, 그것이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子는 남녀의 성을 구분하는 단어에서는 분명히 '아들'로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어의 모자(母子), 부자(父子), 자녀(子女), 장자(長子) 같은 단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子가 쓰인 단어 중에서 오래도록 내 마음에 걸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이다. 이는 불교용어로 '선을 행하는 모든 남녀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다. (선남선녀(善男善女)가 여기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늘 의문이 들었다. 왜 남자(男)에는 子를 붙이고, 여자(女)에는 人을 붙였을까? 그러고 보니 아래와 같이 한국어에서 남과 여에 붙는 글자에 차이가 난다.
* 남자(男子), 남인(男人)
* 여자(女子), 여인(女人)
人에는 사람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또 객관화하는 시선이 있다. 굳이 사전을 찾지 않더라도 인간(人間), 본인(本人), 한국인(韓國人) 같은 단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人) 대신 '사람'으로 바꾸면 느낌이 또 달라진다.)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을 성차별의 관점으로 본다면 남자만이 사회 생활이 가능했던 오랜 역사에서 여자의 수행 역시 주체가 될 수 없었던 것을 표현하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측면으로, 子와 人을 나이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子은 앞서 살펴봤듯이, 인간의 기준에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아기'를 가리킨다. 일본어에서는 男子[だんし], 女子[じょし]처럼 子가 붙으면 각각 '아들', '딸'의 뜻으로도 쓰인다. 人에는 '어른, 성인'의 뜻이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여자'와 '여인'을 구분해서 쓴다. 여자는 아기, 아이, 어린이, 어른까지 모두와 어울릴 수 있지만, 여인은 그렇지 못하다. '남인'은 한국어에는 없지만, 중국어에는 있다. 중국어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나이에 따라 더 세분화되어 있는데, 남자를 예로 들면 19살까지를 男孩[nánhái], 20대의 젊은 학생을 男性[nánxìng], 연령대가 있는 성숙한 남자를 男人[nán·ren]으로 부른다.
요즘 한국어에는 없는 남인과 관련된 단어는 옛 문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불교경전인 <대보적경(大寶積經)>과 <불공견삭신변진언경(不空羂索神變眞言經)>에서 '불남인(不男人/不男之人)'이 나오는데 이는 '고자(鼓子), 중성(中性)'으로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를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고자(鼓子)에서는 子가 아들이 아닌 '남자'의 뜻이다. 이와 반대되는 고녀(鼓女)의 상대어로 쓴다면 고남(鼓男)으로 써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생식능력을 갖게 되면 결혼을 했고 그것으로 아이와 어른을 구분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불남인(不男人)'에 있는 남인(男人)도 생식기능을 갖춘 '남자 어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구분한 거라면,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은 수행자를 '남자-남인-여자-여인'으로 구분하고 이 네 단어의 처음과 끝을 고른 단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경전에는 나열된 것들의 처음과 끝을 택하는 식으로 문장을 줄여 쓰는 방식이 자주 보인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일 뿐이다. (왜 이렇게 쓰는지 찾아보려 했지만 부족한 능력으로 알아볼 수 없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경우에도 子를 '아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주제를 마무리하자면, 나는 한국 한자에서 子의 대표 뜻을 '아기, 아이'로 배우고 가르치는 게 낫다고 본다. 우리는 子가 사람을 가리킬 때, 성별을 구분하지 않던 '아기, 아이'에서 '아들', '남자'의 뜻으로 한쪽만 취하는 쓰임으로도 사용되어 온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 언어적 관점에서 글자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뜻을 알고 그것을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좋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子를 '아기 자'로 바꾸면 자궁(子宮)은 말 그대로 '아기 주머니'가 되니, 한쪽에서 주장하는 차별의 문제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아들'을 보면 '딸'이 떠오르는 게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본능인데 한국어에는 女(여자 여)가 있을 뿐 '딸'로 대표되는 한자가 없다. 그럼 女의 대표 뜻을 '딸 녀'로 바꾸는 방법도 있겠지만 [딸려]에서 느껴지듯이 '딸'은 다른 글자가 더해져서 같이 발음될 때 어감이 썩 좋지는 않다. 그리고 女는 男의 상대어로서 훨씬 익숙하다.
누군가는 子를 '아들 자'로 많이 알고 있고, 그 뜻이 틀린 것은 아니기에 '아기 자'로 바꾸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찌 됐든 언어는 시대의 흐름과 요구를 반영하며, 옳은 쪽으로 바뀌어가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결과였을 수도 있고, 권력자의 힘이나 욕심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女를 '여자 여'로 바꾼 좋은 변화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男도 '사내' 대신 '남자'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 같이 女를 '계집 녀'로 배운, 업데이트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직 많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