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는 먹요일이 될 수 있을까? (2)

한국인의 국어생활

by 집우주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사람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형용사인 '예쁘다'와 '아름답다'의 차이를 묻는 것이다. 두 단어를 초급 단계에서 배우는 데 교재에는 모두 'きれいだ[키레-다]'로 나와있기 때문이다. 수업 현장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적극적으로 질문하지 않는 일본인 학생들도 이것에 대해서는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일본어 단어인 きれいだ만으로는 한국어 문장에서 어느 때 예쁘다를 쓰고, 아름답다를 써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통의 한국인에게 물어봐도 명쾌한 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와 당신과 한국인 모두에게 해당된다.) 보통 '예쁘다', '아름답다'는 단어는 외모, 화장, 패션, 액세서리 등 전통적으로 여성과 관련된 쪽으로 사용되는 걸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성별이나 나이 같은 엉뚱한 포인트에서 그 차이를 짚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평소에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에 설명을 하지 못할 뿐, (이건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안다는 것이다. 방법은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영역인 '여자, 여성'의 영역을 넘어서 생각해 보면 된다. 주어에 여자가 아닌 '남자'로 바꿔보고, 또 성별이 특정되지 않는 '사람, 아기, 아이' 같은 단어를 넣어보자. 분명히 느낌이 다를 것이다. 나아가 풀, 꽃, 나무, 강, 산, 바다, 지구, 우주 같은 자연을 주인공으로 해 보면 사전적 정의로 둘을 딱 잘라 구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문장의 느낌을 표현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옷, 신발, 인형, 디자인, 인테리어 등 인간이 만든 문물을 통해 문장의 가능 여부가 달라지는 것도 알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것으로, 영어권 학생들이 묻는 질문이 있다. now로 번역되는 한국어 단어인 '이제'와 '지금'이다. 사전에서 두 단어를 찾아보면 '(말하는) 바로 이때에'로 뜻이 같다. 사전에서 보이는 두 단어의 차이를 꼽으라면 '지금(只今)'이 한자어라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워낙 많이 사용되고 발음도 쉬워서 순우리말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두 단어를 단독으로 보면 그 차이를 파악하는 게 어렵지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일상의 문장들을 조금만 떠올려 보면 그 쓰임이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 지금/이제 몇 시야?

* 지금/이제 밥 먹고 있어요.

* 지금/이제 그만 합시다.

* 지금/이제 어떻게 할까요?

* 지금/이제 바꿉시다.


사전에서 '이제'를 찾으면, '지금'을 찾으면 나오지 않는 '지나간 때와 단절된 느낌을 준다'는 설명이 덧붙여 있다. 꼭 이렇게 정의하지 않더라도 위의 문장들을 읽어보면 지금과 이제가 그 쓰임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알게 된다'고 썼지만 사실 모든 한국인들은 이미 그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고, 상황에 맞게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다만 모국어로 익혀서 거의 무의식처럼 알고 있는 그 차이를 언어 관련 용어를 사용해서 지식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뜻이 정확히 같은 두 단어가 있다면 그 둘을 마음껏 바꿔써도 틀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런 경우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두 단어가 같다면 둘 중 하나는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하나를 가리키는 둘 이상의 단어는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다. 각 지방 사투리가 있지만 우리가 표준어로 통일해 사용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옛날에는 각 지방에서 저마다 각색의 사투리를 썼고, 그 지역과 마을이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활동 영역의 전부였기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동수단이 발달해 전국의 교류와 이동이 활발해지고 인터넷을 통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세상이 펼쳐진 근현대에 이르러, 한국어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은 '표준어'라는 이름으로 단어를 통일하고 일원화한다. 사용자끼리의 약속을 통해서 필요 이상의 단어를 제거해 의사소통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니 뜻이 같은 (또는 정말 비슷한) 여러 단어가 한국인의 말과 글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그 단어들의 '뜻'이나 '쓰임'에 있어서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말맛과 글맛의 차이도 있겠지만 글자 모양과 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면에서 이 점은 논외로 하겠다.)


그러니 '예쁘다'와 '아름답다'는 다르다. '이제'와 '지금'은 같지 않다. 앞서 살펴봤듯이, 외국인의 관점에서 둘이 똑같다고 한다면 왜 한국인은 똑같은 뜻으로 단어를 두 개나 사용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한국어 단어 안에서 살펴봤지만 대한민국 밖의 외국어, 외래어와의 차이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예를 들어, '사과'와 '애플(apple)'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대로 글자와 발음의 차이는 논외로 하자.) 한국인과 외국인에게 '사과/애플'이라고 하면 흔히 빨갛고 탐스럽고 둥근 모양으로 떠올리는 과일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서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는 거리만큼 한국어에서 두 단어는 사용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 사과/애플 + 주스(juice), 파이(pie), 잼(jam), 샐러드(salad)

* 사과/애플 + 즙, 겉절이, 부침개


사과는 마음만 먹으면 '사과겉절이, 사과부침개' 같은 독특한 음식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사과'는 영어인 주스, 파이, 잼, 샐러드와도 잘 어울리지만 '애플'은 한국어의 단어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한국인은 파인애플(pineapple)에서 애플을 '사과'로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요즘 한국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애플(an apple)'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말하지만, "사과가 영어로 뭐야?"라는 부모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뿐, 애플은 한국어에서 단독적인 단어로 쓰이지 않는다. (사전에서 '애플'을 검색하면 스마트폰의 프로그램인 application의 외래어 규범 표기로 나온다.) 한국인들은 '사과'와 '애플'을 분리해서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순화어로 돌아가 이야기를 해 보자. 국립국어원에서 만드는 순화어, 즉 다듬은 말을 만드는 목적은 확실하다.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한자어, 외국어, 외래어 등을 쉽고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말로 바꿔쓰자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고, 또 나름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우리말을 지키고 더 많이 사용하자는 데 동의하고 그러고 싶다. 하지만 단어들을 보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 머그샷 제도 > 피의자 사진 공개 제도

* 스피드 팩토어 > 잰맞춤 생산(체계)

* 플로깅 > 쓰담 달리기

* 베그패커 > 구걸배낭족

* 딥페이크 > (인공지능 기반) 첨단 조작 기술

* 치팅데이 > 먹요일


위는 비교적 최근에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한 다듬은 말이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단어도 있지만, 어느 단어는 글자와 발음과 단어 조합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개인적 감정과 판단을 차치하고 단어의 양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는 한 개의 단어가 두 개로 늘어나는 것으로 똑같은 개념을 가리키는 단어의 개수를 늘리는 행위이다. 우리말을 지키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제안에 동의하고 약속해야 하는데, 일차적으로 이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단어를 외우고 익혀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새 단어를 배우고 익히는 데는 배움에 쓰이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어차피 뜻과 개념이 같다면 기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에너지를 덜 쓰는 일이다. 우리말을 지키자는 숭고한 목적을 이루려면 이 내 에너지를 더 써야 하고,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굉장히 낮다. 잘 알다시피, 국립국어원에서는 당연히 기존 단어가 사라지는 쪽을 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순화어로 제시된 새 단어를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세는 게 훨씬 빠른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상황이다.



** 참고 **

머니투데이. <‘치팅데이’ 또는 ‘먹요일’…당신의 선택은?>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12015005272296&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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