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어생활 51
일부 여성계에서 태아가 착상해서 자라는 여자의 신체기관인 자궁을 '포궁'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방송에서 강연자가 이 주장에 대해서 하기도 했었고, 최근에는 경찰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교육 자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에 대해 반박이 생겨나면서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자궁(子宮)을 쓰지 말자는 주장의 근거는 한자 子에 있다. 子가 '아들'을 뜻하니 자궁은 '남자아기를 품는 집'이 되는데 이를 남성 중심으로 만든 단어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자 子를 '아들 자'로 배운다. 아들이 대표 뜻이다. 모자(母子), 부자(父子), 자녀(子女), 장자(長子) 같이 '아들'로 해석되는 단어들을 일상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글자 子의 뜻으로는 '아들'이 제일 먼저다. '아들' 하면 상대어인 '딸'이 떠오른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남아선호사상에서 드러나듯이 오래도록 딸은 언제나 아들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특히, 한국은 50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의 조선왕조에서 딸은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 되고, 아들만 부모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기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여성계의 주장은 성차별적 요소를 배제해 胞(세포 포)를 쓴 포궁(胞宮)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위와 같은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평등하지 못했던 성(性) 차별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子는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자궁에 쓰인 경우에는 '자식, 아기'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랜 역사에서 단어가 사용되어온 다양한 뜻을 알고 상황에 맞게 해석하면 될 일이지 잘 쓰고 있는 단어를 일부의 의견을 따라서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단어 하나만 바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자궁은 포궁으로 바꾸면 포궁암(胞宮癌), 포궁출혈(胞宮出血)처럼 관련한 의학 용어들도 모두 바꿔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게 되는데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바꿔야 할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논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면 기사를 찾아보기로 하고, 어쨌든 <한국인의 국어생활>로 돌아오자. 나는 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논쟁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 논란의 중심인 글자 子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어졌다. 잘 생각해 보면 子를 '아들'로 풀이하는데 딸에 해당하는 한자는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女가 '딸'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자'의 뜻도 있어서 남자를 가리키는 男(남)과도 상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유독 '아들 자'로 배우는 子가 독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한자사전에서 찾아봤다.
① 아들
② 자식(子息)
③ 첫째 지지(地支)
④ 남자(男子)
⑤ 사람
⑥ 당신(當身)
⑦ 경칭(敬稱)
⑧ 스승
⑨ 열매
⑩ 이자(利子)
⑪ 작위(爵位)의 이름
⑫ 접미사(接尾辭)
⑬ 어조사(語助辭)
⑭ 번식하다(繁殖ㆍ蕃殖ㆍ蕃息--)
⑮ 양자로 삼다
⑯ 어리다
⑰ 사랑하다
⑱ 아들자(--子: 부수(部首)의 하나)
놀랍게도 子의 대표 뜻인 '아들'과 앞서 살펴본 '자식'뿐 아니라 16개의 풀이가 더 있었다. 어쨌든 子는 사람에 쓰이는 글자이니 이 중에서 '사람'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을 먼저 살펴보자. 아마 남자(男子), 여자(女子) 같은 단어는 '⑤ 사람'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 단어들의 子를 '아들'로 풀면 '남자 아들, 여자 아들'이 되는데, 말 그대로 말이 안 된다. '⑦ 경칭, ⑧ 스승'에서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장자(莊子), 노자(老子), 묵자(墨子) 등 사상가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⑪ 작위(爵位)의 이름'은 고대 중국에서 귀족이나 공신에게 주던 다섯 가지 작위(爵位)인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⑯ 어리다'의 뜻을 통해 '아기, 아이, 어린이'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이외에도 '⑭ 번식하다, ⑮ 양자로 삼다'도 사람을 가족으로 삼는 것과 관련한 뜻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살펴보니 子가 아들뿐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에 많이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전의 풀이에 '④ 남자(男子)'도 있듯이 대부분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다.
반면 사람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뜻도 많았다. 子는 십이지(十二支)에서 동물 쥐와 대응되는 글자로 '③ 첫째 지지(地支)'에 해당한다. 구기자(枸杞子), 오미자(五味子), 치자(梔子)는 '⑨ 열매'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⑫ 접미사'는 사물의 상태나 속성을 가진 글자에 붙어서 쓰인 모자(帽子), 의자(椅子), 과자(菓子), 상자(箱子), 탁자(卓子), 책자(冊子), 액자(額子), 박자(拍子), 주전자(酒煎子)나 물리에서 주로 쓰이는 단위인 전자(電子), 분자(分子), 원자(原子), 양자(量子), 유전자(遺傳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어에도 거울을 뜻하는 镜子[jìngzi]나 일본어에도 부채를 뜻하는 扇子[せんす] 같은 단어에 子가 쓰인다.) 이외에도 '⑩ 이자(利子)'라는 뜻도 있고, 子가 한문에서 '⑬ 어조사(語助辭)'로 사용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단어들에 子가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유어인 줄 알았던 몇몇 단어의 글자 '자'가 한자 子라는 것이 새삼 새로웠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子가 다양한 뜻으로 많은 단어에 쓰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인간이 만든 언어는 인류의 생활과 사고를 반영한다. 삶의 모습과 생각이 바뀌면 인간은 새로운 형태, 새로운 방식으로 단어를 만들려고 한다. 과거부터 써 오던 단어가 현재의 상황, 또는 지향하는 미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어를 바꾸자는 주장에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삶의 모습과 생각과 방향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단어를 갖거나 선점함으로써 언어에 있어 권력을 얻고 싶은 인간의 욕망도 볼 수 있다.) 그런 주장이 들리면 당연히,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기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고 타협하는 과정은 치열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사용에 있어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세상이 복잡해지며 점점 더 많은 단어가 필요할수록 이런 문제는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어쨌든 나는 자궁을 포궁으로 바꾸자는 주장과, 그 반박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모순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둘에 모두 동의해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각각 중요하게 판단하는 가치가 다를 뿐,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논쟁이 끝나지 않고, 서로를 극렬히 비난하는 소모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子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러면 우리가 그동안 잘 모르고 지냈던 子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子를 이해할 수 있다면 갈등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