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가만히 있는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by 정이작가

친정 아빠는 쉬는 날이면 근처 산이나 공원으로 운동을 가는데, 그곳에 갈 때마다 풍경을 담은 사진을 나에게 보내 준다. 지난가을 어느 날에도 아침부터 나에게 사진을 보내왔다. 가을 옷 입은 단풍, 은행나무 사진이었다.


“와 어느새.”

“어제까진 그저 그랬는데 오늘 확 변함.”


전날까지만 해도 색의 변화가 눈에 띌 만큼이 아니었다는데, 사진 속 노랗고 빨간 나무의 모습은 원래부터 그 색을 띠고 있었던 것처럼 태연해 보였다.


집 앞 대로변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만 해도 큰 변화는 없어 보였는데, 그날 지나다 보니 어느새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원래부터 그 색이었거나, 마치 ‘노란색 on’ 버튼을 눌러 전등 스위치 켜듯 한순간에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언제 이렇게 노랗게 물든 거지?’


가을 옷 입은 나무를 보며 새삼 궁금해졌었다. 저 나무는 그냥 잠자코 있다가 시간이 되어, 시기가 되어 색이 변한 걸까, 아니면, 늘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티 내지 않고 묵묵하게 하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준비한 기다림 끝에 시기와 날씨 등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순간에 변할 수 있었던 걸까.


객관적인 지식을 찾아봐도 후자가 맞을 것 같았다. 내 생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무가 지난 계절 동안 꾸준히 준비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기회가 왔을 때 ‘짠’ 하고 마법을 부리듯 변신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을까.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말은 살면서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기억날 만큼이나 자주 들었던 이 말은, 나에게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과거에 나는 기회가 와도 그것이 기회인 줄 몰랐고 기회라고 인식이 되어도 용기가 없어 잡지 못하기도 했다. 용기가 없었던 건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였다. 용기가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막연하게 노력은 했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열정이 부족한 노력이었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과거 내 나름의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 시절 쌓인 소심한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현재 열정을 담은 노력을 만들어 냈다. 시도조차 하지 못하거나, 기회를 잡지 못해 수많은 좌절을 해야 했지만, 꾸준히 묵묵하게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나만의 자리에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몸을 움직였다는 것이 아니라 멈춰있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에 나는 용기가 생겼다.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는 용기 말이다. 서서히 변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 인식한 용기는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기회가 왔을 때 주저 없이 도전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 두려움보다는 용기의 크기가 더 컸다. 기회라는 것이 나에게까지 미처 닿지 않았을 때 나는, 이제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누가 나에게 용기 버튼을 ‘on’으로 눌러 갑자기 용기가 생긴 것이 결코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과거의 노력이 현재까지 이어졌고, 그렇게 쌓인 노력이 구체화되었고, 그러면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생겨 용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적당한 때에 발현되어, 뻥 터지듯 결과로 드러나게 되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는 말 앞에는 한 문장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다.

“(기회가 오기 전에 묵묵하고 성실하게 준비해라.)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잡아라.”


누구에게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두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조바심 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기회를 잡아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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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기를, 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하고 성실하게 준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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