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절대적인 것.
수학공식이나 영어 단어를 암기한 것은 그 기억이 정확한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판단 가능하다. 수학 공식에 대입하여 정확한 값을 내거나 영어 단어를 어법상 맞는 곳에 정확한 스펠링으로 쓰면 그 기억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시절의 경험, 그리고 그때의 감정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다고 객관적으로 판단 가능한 것일까?
과거의 기억은 의심할 필요 없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해왔다. 굳이 내 기억이 맞는 걸까 의심하며 끄집어낼 필요가 없을 만큼 당연한 생각이었다.
며칠 전, 쌍둥이 언니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엄마가 맨날 너만 예쁜 옷 입혔잖아. 그래서 난 매번 속상했어.”
“무슨 소리야. 엄마가 너만 더 예쁜 옷 입혀서, 엄마가 너를 더 좋아하나 보다 생각하고 혼자 울고 그랬는데.”
삼십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쌍둥이 자매는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어릴 적에 왜 우리 엄마는 항상 언니에게 더 예쁜 옷을 입혔던 걸까 고민했는데, 쌍둥이 언니는 내 기억과 반대로 나만 예쁜 옷을 입었다고 했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기억은 나에게만 절대적인 것이지, 사실은 상대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말이다.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이다. 사람이 각자 경험하고 느껴 본인의 의식 속에 담아두는 것이니, 같은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할지라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건 당연하다.
나에게 애절한 그리움의 흔적으로 남은 첫사랑의 기억이 상대에게는 그저 스친 수많은 사랑 중 하나의 기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함께 나눈 시간을 다르게 기억한다고 해서 상대를 탓할 수는 없다.
같은 상황에서, 사람마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입장 차이가 있고, 그 입장 차이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결과적으로는 각자가 기억하는 장면이 다르다. 아무리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상대의 마음으로 느끼고, 상대의 머리로 기억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과거에 나는 분명 상대에게 어떤 사실을 전달했다고 기억하는데, 상대는 그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 적이 있다. 당황한 나는 순간 내 기억이 잘못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결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이후에 한동안 왠지 모를 억울함을 느꼈다. 당시에 사람마다 각자의 기억이 다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라 여겨버렸던 것이다. 억울함도 아마 그래서 느껴졌으리라.
얼마 전 아이와 논쟁을 벌였던 적이 있다.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서로의 기억이 달랐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맨날 왜곡된 기억을 갖고 그래?”
“무슨 소리야. 네가 맨날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잖아!”
아이와 나는 서로 다른 몸에서 다른 마음으로 느끼고, 다른 머리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건데 서로의 기억이 왜곡됐다며 싸우고 있었다. 끝을 모르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다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무의미한 논쟁이 아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이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이라고 해서 나쁘거나 좋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기억은 나에게만 절대적인 것이고, 그것이 정답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는 일은 적어졌다. 억울할 일도 적어졌다. 그저 상대방과 내가 같은 경험 속에서도 다른 기억을 갖고 있구나 하고 말면 수긍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