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feat. 은찬맘)

초심을 되새겨줘서 고마워요.

by 정이작가

오랜만에 지인과 통화를 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서로에게 힘든 이야기는 털어놓지 않고, 그저 서로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줬다. 통화를 마친 후나, 잠깐이나마 얼굴을 보고 돌아설 때면 기분 좋은 에너지가 몸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런 우리의 인연은 아이들로 인해 시작되었다. 큰 아이가 열한 살이었을 때 같은 반 친구로 만나 인연이 닿았으니, 꽤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만났던 당시에는 아이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했고 함께 기도했다. 당시 아이에 대한 고민은 나에게 있어 가장 아프고 힘든 것이었기에, 내가 더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나에게 고마운 인연이다. 하지만 아이가 연결 고리였기 때문에 우리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 이상 좁혀지는 것을 의식적으로 막았다. 소중한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나 친구처럼,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다 멀어졌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2년여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아이가 먼저 친구에게 연락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유일하게 소식을 전했던 아이 친구 엄마이기도 하다. 장례식장에 와서 말없이 큰 아이 옆에 앉아,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열심히 먹으며 눈물을 훔쳤던 아이 친구의 모습이 생각난다. 내 아이를 그만큼 생각해 주는 친구,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는 우리에게 마음 깊이 고마운 존재로 남아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던 중에, 지인이 나에게 앞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짤막한 시를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중이었는데, 막연하기만 했던 책쓰기에 대한 희망을 털어놓았다.


"제 책 한 권 내고 싶어요. 그런데 막막하네요."

"거니 맘은 할 수 있어요. 시 너무 좋더라고요. 아는 분이 책쓰기 강의 듣고 책 냈다던데, 그 수업 내가 알려줄게요."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했던 작가로서의 꿈을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해 준 은인이었다. 사별 후 2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글쓰기는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으니,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11월 그쯤부터 저도 회사에서 엄청 힘들었거든요. 지난 2년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이 자양분이 되어 이번에 회사를 이직하게 되었어요. 이제 연봉협상만 앞두고 있어요."

"축하해요. 지난 2년간 우리 정말 힘들었네요. 그래도 은찬맘은 돈 벌면서 힘든 거지.. 나는 돈도 안 되는 책 쓴다고 이러고 있는데.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어머, 우리 건이맘 이제 살만한가 봐. 잊었어요? 처음부터 건이맘 글쓰기의 목적이 돈이 아니었잖아요. 치유였잖아요. 치유. 자, 나 따라 해 봐요. 치. 유."

"치. 유. 맞네요. 치유였어요. 제가 초심을 잃었네요. 고마워요."


잊고 있었다. 지난 2년간 거의 매일 글을 쓰며, 세 권의 에세이를 쓰며 분명 그로 인해 치유받고 있었으면서, 내가 이토록 글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자 목적이 치유였다는 것을 말이다.




얼마 전, 브런치에 썼던 소설 <봄봄봄> 마지막 화에서, 봄이가 세 권의 에세이를 출간한 후, 커져가는 욕심으로 고민하는 이야기를 담았던 적이 있는데, 작가로서 현재 내 모습을 그대로 봄이에게 투영시킨 것이었다.

https://brunch.co.kr/@hcrys647p/74

살기 위해 글을 썼고, 내가 살고자 쓴 글을 단 한 명이라도 읽고 공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 욕심내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오랜 세월 소통한 인친들이 독자가 되어 나의 글을 응원해주고, 책이 출간될 때마다 무조건 읽어주고 후기까지 릴레이처럼 올려준 덕분에 무명작가로서는 나름 선방했다. 베스트셀러라는 딱지를 세 권의 책 모두 받았으니 말이다. 공감했고 위로받았다는 독자들의 후기를 보며 감동했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내 글이 닿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겨 버렸다. 이 욕심은 글에 대한 나의 초심을 흔들어 버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돈이 되지 않는 일이기에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생각까지 하도록 만들었다.


어느 에세이는 삼천 권이 팔리고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던 적이 없다. 공공연한 비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원고를 선택해주고, 예쁜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나오도록 해주기에 고마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놈의 욕심이 그 마음을 훼방 놓았다. 내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는 이 욕심으로 블로그에도 글을 쓰기 시작했고, 네 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에도 입성했다. 욕심을 진득한 성실함으로 스스로 포장한 채 말이다.


이 욕심은 브런치에 입성하면서부터 더욱 나를 괴롭혔다. 브런치 구독자 수나, 메인 노출 횟수, 글 조회수, 하트 수만이 지표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들이 많아야만 잘 쓰는 글이고, 잘 읽히는 글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심오하거나, 어려운 언어로 글을 쓰지 못하는 내가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도 분명 있지만, 일주일이 넘는 괴로운 고민을 한 끝에, 이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나만의 스타일대로 꾸준히 글을 써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브런치에 거의 매일 글을 쓰면서, 조용했던 나만의 혼란은 잠잠해져서 이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좋아서 쓰고 있지만, 욕심은 꾸준히 나를 흔들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오랜만에 통화한 지인이 "치유"라는 초심을 찾아 주었다.

그렇다. 내 글쓰기의 목적은 돈도 아니요, 성취도 아니요, 치유였다. 초심을 되새기며, 오늘도 이렇게 나는 글을 쓴다.


고마워요 은찬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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