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이제 그만.

by 정이작가
트라우마,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 여러 가지 정신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라는 건,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 생각했다. 이것은 이제 과거가 된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나에게 붙어 버렸다. 단어가 가진 의미만큼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가끔씩 나를 격한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다. 소화되지 않은 과거 아픔의 불순물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만드는데, 그 불안의 원인이 마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인 것처럼 둔갑시킨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불안해지도록 한다. 불안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불편해진 날 밤에 나는 자기 전에 어떤 꿈을 꾸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 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이 글에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글이 타인에게 괴로움으로 닿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을 때, 가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아이러니하게, 가슴이 뜨거우면서 시렸다. 너무나 생생했던 그 꿈에서 깬 후, 시린 가슴을 쓰다듬으며 꿈 해몽을 찾아봤다. 시리거나 뜨겁거나 하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낀 나는 꿈 해몽을 무시하기로 했다. 넘어가지 않던 밥을 억지로 삼켜가면서 말이다. 꿈을 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갑자기.


어제도 난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고, 그 꿈을 꾸지 않기를 기도하며 잠든 것 같다. 그런데 그 꿈을 꾸고 말았다.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로, 꿈인 줄 알면서 이 꿈을 꾸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꿈을 멈춰야겠다는 의지로 잠에서 깼다. 또 가슴에 불이 났다. 뜨거우면서 시렸다. 불안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한동안 눈을 감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 상태로 얼마 동안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순간적인 불안의 꼬리를 끊기로 했다.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 불안을 키웠고, 그 불안이 무의식에서 움직여 그 꿈을 꾸도록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잠들었다.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나갔다. 그릇을 꺼내려는데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철렁. 다시 불안했다. 당황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깨진 그릇 조각을 치웠다. 어제 설거지를 마치고 아무렇게나 쌓아 두었던 그릇 건조대 위에 간당간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그릇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니 의미를 두지 않았다.


소파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언제까지 이 트라우마는 나를 괴롭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남편이 미웠다. 미움이라는 감정도 금방 놔버렸다. 과거에 대한 감정은 나의 오늘 그리고 내일에는 불필요한 것일 테니.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글을 쓰다 보면,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불필요한 기억이나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열심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트라우마가 나를 떠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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