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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May 12. 2016

석조전 옆에서 변원룡을 만나다

경향신문 2016..5.12일자<윤희철의 건축스케치>




초여름 같던 지난주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인 변월룡(1916~1990)의 특별전이 열리는 덕수궁 미술관을 찾았다. 수문장 교대식이 있는지 몰려드는 사람들을 헤치고 덕수궁 경내로 들어섰다.

고즈넉한 중화전을 지나 시원스레 물줄기를 뽑아 올리는 분수대에 도달하니 직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백색의 서양식 건물 두 채와 마주하게 된다. 남쪽을 바라보는 건물이 석조전, 동쪽을 바라보는 건물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덕수궁(德壽宮)은 원래 세조 때 남편을 여읜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를 위해 마련한 건물이었다. 이후 한씨의 장남인 월산대군이 이 집을 물려받았다가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가 임시로 왕의 거처로 사용하면서 궁으로 승격되었다. 선조가 죽은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면서 이 궁의 명칭을 경운궁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순종 때 그의 즉위와 함께 명칭을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1897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했던 고종이 이곳에서 황제로 즉위하자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정궁이 되었다. 구한말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 접견 등 국가적 대사들은 정전인 중화전(中和殿)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황국의 위상에 걸맞은 서양식 정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영국인 ‘하딩’의 설계로 이오니아 양식의 신고전주의 건축물인 석조전을 1910년 완공했다. 이후 이 건물은 대한제국의 정전으로 사용되다가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이후로는 미술관, 국제회의장,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6·25전쟁 이후부터 198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가 2014년 대한제국 당시의 가구들을 원래대로 배치해 대한제국의 역사관으로 복원되었다.

이러한 석조전을 옆으로 바라보며 발걸음을 현대미술관으로 옮긴다. 고려인 2세로 러시아에서 활약하다 종전 후 북한을 방문, 북한의 모습을 담은 다수의 작품을 남긴 변월룡의 작품세계에 빠져들었다. 수많은 인물화에서 보이는 그의 뛰어난 데생력과 폭풍우 치는 풍경, 북한의 굴곡진 소나무를 세밀하게 표현한 에칭화는 펜드로잉을 하는 나로서는 큰 스승과 마주하는 짙은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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