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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Oct 11. 2017

묵객들을 유혹한 금수정

경향신문 <윤희철의 건축스케치> 2017.10.12일자

의정부를 지나 포천을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43번 국도는 포천의 주요 시가지를 경유하여 강원도 철원까지 이어진다. 포천시청이 있는 포천의 중심가를 뒤로 하고 북쪽으로 차를 달리다보면 우측에 ‘3.8선 휴게소’라는 낡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점 위쪽이 6.25이후 수복된 지역임을 암시해 준다. 이 3.8선 휴게소 너머에는 동에서 서로 흘러 한탄강과 만나는 영평천이 자리 잡고 있다. 다리를 건너 삼거리에서 영평천을 따라 왼쪽으로 얼마간 직진하면 교차로가 나타난다. 교차로 입구에 놓여진 ‘안동김씨고가’ 안내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하여 오가리 546번지에 도착하면 제법 규모가 있는 멋진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안동김씨 고가이다. 원래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몇 년 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이 고가는 사랑채의 규모가 다른 반가(班家) 보다 큰 편인데 그 이유는 이곳의 풍광이 뛰어나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았기 때문이란다. 이 고가 앞쪽 절벽 위에는 금수정(金水亭) 이란 정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가히 절경이다. 이 정자는 원래 조선중기 1608년 김명리라는 사람이 지은 것으로 이 지역이 마치 소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정자의 이름을 우두정(牛頭亭)이라 불렀다. 얼마 후 그는 그의 사위인 봉래 양사언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게 된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 ’라는 시로 잘 알려진 양사언은 이 정자 이름을 금수정(金水亭)으로 고쳤다. 현판은 금수정 아래 바위에 새겨진 ‘金水亭’이란 그의 글씨를 탁본한 것이다. 절벽 아래에 놓여 있는 여러 바위에는 다수의 양사언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 영평천의 물길이 스쳐 많이 닳아 없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그의 서체에는 힘이 묻어난다. 영평천이 만들어낸 금수정 일대의 빼어난 경관은 양사언 이외에도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묵객들의 시(詩) 경연장이 되었다. 금수정 아래 물과 맞닿은 이 바위 저 바위에는 그들이 남겨 놓은 싯귀며 글씨들이 다수 남아있어 이곳이 얼마나 경치가 뛰어났던 곳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늦가을 강 건너에서 바라본 영평천과 금수정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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