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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Oct 01. 2018

우저서원

경향신문 <윤희철의 건축스케치> 2018.9.27일자

 김포대로 북변 사거리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이어진 중봉로로 접어든다. 직선의 도로가 크게 왼쪽으로 선회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우측으로 이어진 좁은 길로 내비는 나를 안내한다. 좁은 길로 300m 가량 직진하니 왼쪽으로 연잎이 무성한 연못 뒤쪽으로 우저서원의 단아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우저(牛渚)서원은 중봉 조헌(重峯 趙憲, 1544~1592)의 생가터인 김포시 감정동에 인조시대인 1648년에 지어진 서원이다. 중봉 조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도끼를 지고 일본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청하는 도끼상소로 유명하다. 이듬해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게 점령되었던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서 10배가 넘는 왜군과 맞서 싸우다 700의사와 함께 전사한 의병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671년에 우저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는데 서원 주변에 소들이 물을 먹는 늪지가 있어서 우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이 우저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개의 서원중 하나로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서원은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김포평야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솟을대문으로 된 외삼문을 들어서면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놓여 있고 중앙에는 강학공간인 여택당(麗澤堂)이 놓여 있다. 팔작지붕의 여택당 뒤쪽으로 놓여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향공간 이 자리한다. 그 안쪽 중앙에 조헌의 위패가 있는 사당이 위치해 있는데 조헌의 시호인 문열(文烈)’을 따라 문열사(文烈祠)’로 불리워지고 있다. 보통 사당 앞에는 제향의식을 위해 필요한 공간인 동무, 서무가 있는데 이 서원은 내삼문과 사당과의 간격이 좁아 우측에 조헌선생유허추모비를 모신 비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좌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우측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어 서원의 운치를 더해 준다.  

 

 서원 주변에는 도로명과 공원명, 마을명이 모두 중봉으로 되어 있어 이 지역에서의 중봉 조헌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또한 지금은 도로가 놓여 사라져버렸지만 여우재 고개의 이름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온다. 중봉은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니기 위해 고개를 넘어 다녔다 한다. 그는 이 고개를 넘다가 예쁜 여자로 변신한 여우가 매일같이 나타나 그를 유혹하였으나 그의 지혜로 유혹을 뿌리치게 되자 처녀는 흰여우로 변해서 숲으로 도망쳐 버렸다. 이후 이 고개를 여우재 고개라 불리워져 왔다 한다

 

 추석도 지았으니 이제 우저서원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의 단풍이 곱게 물들게다. 단풍 가득한 우저서원의 가을 운치가 눈앞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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