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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Jun 18. 2024

루체른

루체른



루체른(Lucerne)은 스위스 중부 루체른 호(湖) 서안에 면해 있는 도시로 알프스 산맥을 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8세기에 베네딕트파(派)의 수도원과 대성당이 건립되고 해발 2,000m가 넘는 생고타르 고개(Saint Gotthard Pass)가 완공됨에 따라 루체른은 이탈리아 밀라노와 연결되어 지중해 지역을 연결하는 무역 중계지로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필라투스, 리기, 티틀리스와 같은 거대한 알프스가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그 중 루체른 남서쪽에 위치한 필라투스 산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이 죽인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총독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로마 총독 빌라도의 유령이 자신의 죄로 인해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이 산에 머물렀다는 이야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 산은 변화무쌍한 날씨와 천둥 번개로 사람들이 무서워했는데 유럽에서는 불길하고 악의 상징인 용이 사는 산으로 알려졌다. 

이 도시는 루체른 호로 흘러 들어오는 로이스 강을 사이에 두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강을 이어주는 여러 다리들 가운데 가운데 카펠교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1333년에 지어진 이 다리는 길이가 280m로 호수를 통해 침입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지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나무다리라 한다. 다리의 천장에는 루체른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과 수호신을 그려놓은 하인리히 베그만(Heinrich Wagman)의 111개의 판화에 루체른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다리 중간에 있는 팔각형의 석조 바서투름(물의 탑)은 등대를 겸한 루체른의 방어탑으로 위급할 때 시민에게 경종을 울리는 종각의 역할을 하는 한편 감옥과 문서보관소의 기능을 하였다. 

구시가지 북동쪽에 위치한 ‘빈사의 사자상’은 스위스의 아픈 역사와 스위스 용병의 충성심을  잘 보여주는 조각품이다. 스위스는 지정학적으로 여러 나라들 사이에 끼어있어서 끊임없이 주변국들의 침략을 받아왔다. 로마시대에는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했고 5세기경에는 게르만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0세기부터 11세기에 걸치는 동안에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하였다. 또한 14세기에는 합스부르크家의 지배를 받아 스위스의 역사는 오랜 세월 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먹잇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게다가 주변이 온통 산이라 자연환경은 척박했고 긴 겨울 동안 쏟아지는 북풍한설은 이들의 생활을 한없이 힘들게 했다. 주변국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스위스는 정복자들에게 약탈당하고 남자는 노예로 끌려갔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시기에는 오스트리아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인해 스위스인들은 견디기 힘든 역경으로 내몰렸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생겨난 루체른의 이야기가 윌리엄 텔의 이야기다. 화살로 자신의 아들의 머리에 있는 사과를 맞추라는 이야기는 스위스인들의 독립의지를 깊게 심어주었다. 윌리엄 텔이 용병 출신이었듯이 스위스의 남자들은 몸이라도 팔아야 했다. 그래서 스위스의 남자들은 예로부터 주변 강대국에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용병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스위스 용병들의 충성심과 용맹성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전해져 온다. 대표적으로는 로마 교황청과 프랑스 용병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1527년 로마의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신성로마제국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로마 교황청이 함락위기에 처하자 자국의 이탈리아 군인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189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3/4이 전사하면서까지 교황을 사수하였다. 스위스 용병들의 충성심과 용맹성에 감탄한 로마 교황청은 이때부터 근위대를 항상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해오고 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는 프랑스 혁명 때의 일이다. 프랑스 혁명(1789년)이 일어나자 1792년 왕궁을 지키던 1,000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왕궁을 지키기 위하여 혁명군과 대치를 하고 있었다. 이에 혁명군은 ‘이 혁명은 우리나라의 일이니 우리와 상관없는 당신들은 빠지라’라고 만류하였으나 스위스 용병들은 “우리들은 왕궁을 지키는 것이 의무이므로 물러설 뜻이 없다.“ 라며 끝까지 싸우다 결국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루체른에 있는 ‘빈사의 사자상’은 이처럼 자신의 의무를 다하다 죽어간 스위스 용병들의 죽음을 창에 맞아 죽어가는 사자로 표현되어 있다. 스위스 용병들이 보여준 ‘믿음’의 정신은 오늘날 스위스의 정신으로 이어져 스위스의 은행 사업을 비롯한 시계, 나이프 등 스위스에서 만들어 내는 제품들에 대한 세계적인 신뢰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림은 로이스 강변에서 바라보이는 루체를 시가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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