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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작자 Jul 16. 2020

SNS 사진이 말하다

나도 꽤 괜찮아

몇 년째 SNS를 이용한다. 얼굴북은 접은 지 오래되었지만 인별그램은 꾸준히 하고 있다. 얼굴북은 개인사를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느닷없이 추천 친구로 뜰 때마다 뜨악하고 의미 없는 광고 피드를 보는 시간이 아까워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계정을 삭제하지는 않았다. 그 안에 올려놓은 사진들이 추억이란 생각에 아직까지 방치 중이다. 인별그램을 사용하던 초기에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한 개만 올릴 수 있었다. 그때는 어떤 사진을 올릴지 얼마나 신중하게  골랐던가. 그에 비해 요즘은 여러 장의 사진은 물론 실시간 동영상까지 올릴 수 있다. 나는 대게 여러 장의 사진을 한 번에 올린다.


그런 날이 있다.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때문에 침대 위에서 눈을 감은 채 과거부터 최근까지 싫은 사람부터 보고 싶은 친구들까지 모두 머릿속에서 만나고 오는 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새벽에는 아주 급진적이 된다. 오늘이 그랬다. 머릿속에서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한껏 희망적이 되었다가 이내 내가 잘하고 있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깊은 새벽 나를 되돌아보면서 내 SNS를 들어가 보았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 200개가 채 안 되는 사진과 짧은 글을 올려 두었다. 그 네트워크 안에서만 친구인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알고 지내는 지인과 친구들도 있다. 한 지인의 SNS에는 럭셔리한 호텔에 있는 사진이 자주 올라오곤 한다.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특별한 날 호텔에 묵었던 사진들이다. 호텔을 이용하려면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하고 그럴 수 있다는 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계속 호텔에서 찍은 사진을 올릴지도 모르고 그를 팔로우 한 이상 나는 그 사진들을 계속 봐야 할 것이다. 그는 호텔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것일까 단순히 즐거운 경험을 찍은 사진에 내 과대망상이 재발한 것일까.

이렇게 누군가 나보다 호사를 누리는 사진을 올리면 어쩐지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힘들다. 내게 결핍된 무언가를 시도 때도 없이 일깨워주는 피드에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인별그램으로 말하고 싶은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핸드폰 화면에 검지 손가락 대고 밑에서 위로 밑에서 위로 움직이다 보면 가장 처음 올린 사진이 나온다. 아뿔싸 십만 원을 넘게 주고 직접 산 향수 사진이다. 손이 가는 대로 사진을 클릭해본다. 사진 아래 짤막하게 쓴 글귀도 읽어본다. 그 누군가도 내가 올린 몇 장의 사진에 마음이 쓰여 울적해졌을지도 모른다.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보았다면 허세스럽다고 생각할  사진도 몇 장은 있을 것이다.

사진들을 보다 이런 날이 있었지 이곳에 갔고 저런 것들을 봤었는데 이 친구랑도 만났었고 그 날 참 좋았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객관적으로 내 인생의 몇 년이 손안에 담기는 기분이다.

이 사진들이 날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도 꽤 재밌고 즐겁게 살았던 거 같아서 소소한 행복을 누렸던 거 같아서 마음속이 조금 편해진다.


다행이다. 사진 속 나는 늘 즐거웠고 항상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매번 좋아 보이는 사진만 올리면서 내가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진 적도 있었는데 다시 보니 오히려 잘한 일 같다. 푸르스름하게 아침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 우울했던 날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건 괜찮지 않으니까. 맘껏 행복해 보이는 사진 속 내가 좋은 날이 있었다고 말해줘서 참 다행이다.

아침이 오면 조금은 너그럽게 꽤 괜찮은 내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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