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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작자 Apr 27. 2020

할머니, 할머니

기억할 때 잘해주세요

할머니에 대한 내 최근 기억은 냄새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건네준 출산 축하금 봉투에서 좀약 냄새가 났었다.    


오전 11시 57분 부재중 통화가 와있다. 저장된 이름은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오면 핸드폰을 들고 받을지 말지를 고민한다. 대게 80%는 받지 않지만 간혹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기 전 엉겁결에 통화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 같이 살았고 할머니는 나를 초등학교 삼 학년까지 엄마 대신 봐주었다. 엄마는 늘 아빠와 가게에 나가 있었다.

10년 남짓한 세월을 같이 지냈지만 유치원 이전에 기억은 없다. 매일 아침 유치원 갈 준비로 할머니가 빤빤히 머리를 빗겨 묶어주었던 일, 일요일 오전이면 할머니의 계모임을 따라가 친구분들에게 천생 여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일, 할머니가 박카스를 마실 때면 병뚜껑에 한 잔을 얻어마셨던 일, 오빠에게 주려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없다고 말한 일,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전 작은엄마와 엄마를 비교한 일, 대학등록금을 낼 시기에 한 번도 도움을 주지 않은 일 등 단편적인 기억들만 떠오른다.


나는 지지난달에도 할머니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입바른 소리를 못하는 내 첫인사는 "어"였다. 할머니가"나 좀 아까 네가 전화를 안 받아서 울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무덤덤한 듯 말했다. "잤어. 애기랑"

할머니는 몹시 억울한 듯 덧붙였다. "잤구나, 속상해서 울었어.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네가 자꾸 전화를 안 받어서."

그 순간 떠오른 시간들이 있다. 초등학교 사 학년 때부터 할머니와 떨어져 살기 시작해서 열일곱 살 때부터 서른 살까지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고 그 시간 안에서 나는 아빠를 수없이 죽였다가 저주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게 아빠의 부모 그 이상도 아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아가 시절부터 나를 엎어주고 먹여주고 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기억일 뿐 내게 남은 기억은 아주 차갑지만 미지근한 척하는 마음뿐이다.

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엄마와 오빠는 아빠와 그의 가족들과 다시 왕래를 시작하였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병상에 있을 때 십여 년의 세월을 비워둔 채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갔다.  


깊이 체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일주일 이상 먹는 음식마다 명치 부근에 가 얹혔다. 그들이 그랬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얹혀서 내려가질 않는다. 나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가족, 오빠와 엄마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을 가는 날에도 집에 있었다. 한 번 마주하고 나니 더 멀어지고 싶기만 했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나를 너무 힘들었던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할머니가 싫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아프고 기억해내기 싫은 기억들을 써내려 가다 보면 체증이 조금 내려갈까 하는 마음에 적어본다.


나는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 누워있던 아이가 내 대답 대신 옹알이를 했다. "애기 소리냐?" 할머니가 말했다.

"응, 옆에 같이 있어."


할머니, 좋아했고 미워했던 나의 할머니, 아버지라는 사람의 어머니.

이제부터라도 다시 써 볼 수 있을까, 할머니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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